영화읽기

우리들의 블루스, 여운의 드라마.

켓세라세라 2022. 6. 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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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스 Blues, 짝을 맞춰 추는 춤이기도 하고, 느린 템포의 음악 박자이기도 하다. 째즈만큼이나 블루스 박자를 바탕으로 한 일렉기타, 색스폰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 정말 마음이 블루해지기 때문이다. 속된 표현으로 연애를 뜻하기도 한, 블루라는 우울한 색깔에서 비롯된 감성을 자극하는 단어이다.

 

우리들의 블루스는 위로와 격려, 화해와 용서를 다룬다. 삐그덕 거리며, 쩔뚝거리며, 상처주고 상처받고 살아온 인생에 대한 직시의 드라마다. 아모르파티다. 자신의 운명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쏘냐.

 

그런데 그 운명은 누군가와 같이하는 숙명이다. 모두다 짝, 상대방이 있다. 부모 자식간, 형제남매간, 연인간, 친구간, 스승과 제자간, 선배와 후배간, 인간에 사이 간글자가 들어간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 사이에 우리는 서로 부딪기며 살아간다.

 

점점 인간에서 사이 자가 사라지는, 상대방이, 짝이 없는 현상들을 우리는 목도하게 된다. 신간 고립의 시대도 나왔다. 경제학자가 쓴 외로움과 고독, 사회적 배제의 사회학이다. 책 결론은 아는 이야기다. 지역공동체는 소중하다. 복지 방향을 사회정책을 수정해야한다. 경제와 노동, 미디어 환경을 조심해야 한다.등등. 어쨌든 고독사만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외로움은 사회적 질병이고, 반사회적 행동의 원천이다. 도시의 냉정함을 노래할 때가 이미 지났다. 스마트폰과 같은 뉴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 메타버스 환경이 관계를 쉽게 포기하게하거나 거절하게 만든다. 개인은 자신만의 세계에 갖쳐 버린다. 그리고 세상의 소음에 침묵하거나, 임계치를 넘으면 발작한다.

 

실존주의자나 명상을 업으로 하는 스님이 아닌 이상, 고독을 어찌 좋아하랴. 인간은 무언가를 같이 하도록 진화한 존재이다. 심지어 죽음도 기꺼이 같이 하려고 하고, 나쁜 짓으로 순장을 강요하기도 하지 않는가.

 

 

TV 화면에서 현실로 돌아 와서, 제주를 생각해 본다. 제주인들은 배타적이다. 외부인들 외지인을 철저히 육지인, 육지것들이라고 부른다. 정치도 자신들만의 철저한 리그와 계산법이 따로 있다.

 

이른바 그 아름다운 제주를 갈기갈기 찢어 놓은 제주4.3사건(차마 항쟁이라는 표현을 쓰지는 못하겠다)때문이다. 1948년에 있었던 그 커다란 비극 앞에 누구하나 자유롭지 않다. 1945년 해방 후 인구 30만이 좀 안되는 제주인구에 사망자만 공식 15, 비공식 5만이라는... 한국 역사 초유의 학살사태였다. 그 원인과 과정, 그 결과는 ...

 

드라마에 나오는 어멍과 할망들은 거의 이 사건 유가족일 확률이 아주 높고, 은희를 비롯한 40~50대는 그들의 한 세대 후손인 것이다. 그 아픔과 슬픔 원망이 가난과 맞물려, 꼬이고 꼬인 인생들이 만들어졌으리라, 그리고 이런 사연은 어디 제주에서만 있었겠는가, 식민통치와 해방, 한국전쟁 과정에서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어지간히 다 비슷비슷했으리라.

 

노희경 작가가 이것을 몰랐을 리는 없고, 그냥 사회적으로 논란거리가 생길 까봐 그냥 넘어갔나보다. 4.3 사건을 제외한 거 외에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제주 횟감처럼, 싱싱하고 활기차다. 당찬 고딩 엄마아빠 되는 과정 얘기도 재미있었고, 그 아빠들 (박지환, 최영준) 연기도 우리를 울렸다 웃겼다 했다. 이병헌의 연기, ‘두부, 순두부, 윗도리, 아랫도리’,,, 김혜자, 고두심 연기야  그야말로 최고아닌가.

 

출처: 일요신문, 두 배우의 연기 케미가 아주 좋았다.

 

이 드라마를 보다가 영화 브로커를 보니까, 감흥이 덜했던 것일까.

 

 

이 드라마 제작비와 영화 제작비를 은근 슬적 비교하게 되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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