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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글 185

오디세이 The Odyssey, 2026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저서 『계몽의 변증법』에서 오디세우스를 힘센 영웅이 아니라 머리를 써서 생존하는 최초의 현대인 전형으로 설명한다. 자연을 지배하고 성공하기 위해 자신의 감정과 본성을 계속해서 참아내야 하는 오디세우스의 모습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의 욕망을 누르고 경쟁하는 우리들의 삶과 매우 깊게 닮아 있다는 것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자신이 창작한 세이렌의 노래를 통해 오디세우스를 전쟁 PTSD에 시달리는 상이용사처럼 묘사한다. 영화 속 오디세우스는 이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 울음을 터뜨린다. 모순으로 가득 찬 지극히 인간적인 내면이 드러난 순간이다."All the things you want it to be. Then, all the things you wish you ne..

호프 HOPE, 2026

나홍진 감독의 영화 ‘호프’는 미지의 존재가 몰고 온 압도적인 절망과 공포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생존을 타진하는가를 파헤친다. 그의 전작들이 비극적 운명 앞에 놓인 인간의 무기력함과 광기를 깊게 파고들었다면, 이번 작품은 그 참혹한 비극의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특유의 질긴 생명력에 주목하게 만든다. 외부의 미지적 위협에 직면한 마을 주민들의 사투는 단순히 외계 존재와의 대립을 넘어, 역사적으로 수많은 외부 침략과 혹독한 환경을 견뎌낸 한국인의 서사와 깊게 맞닿아 있다. 한반도는 예로부터 화강암 산악지대가 대부분을 차지하여 인구 대비 비옥한 평야가 턱없이 부족했던 땅이다. 양이나 소를 기를 목초지도 마땅치 않고 풀마저 질긴 돌무더기 밭에서, 우리 조상들은 온갖 농사기술을 발전시키며 억척같이 목숨을 이어왔다...

[제25편] 적극적 자유의 실천이 가져다주는 행복

1814년 봄, 스코틀랜드 ‘뉴라나크 방직공장(New Lanark Mill)’ 근처. 오언은 마차를 타고 뉴라나크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 전, 오언은 노동자들의 복지와 유아 교육을 위한 투자에 반대하던 동업자들의 주식을 모두 인수하는 등, 모든 법적 절차를 마무리했던 터였다. 이 때 오언은 평생에 걸쳐 잊지 못할 큰 감동과 행복을 경험한다. 뉴라나크로 향하는 길목에는 오언을 기다리던 주민들의 행렬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그들은 마차 앞에 멈추어 서서 네 마리의 말이 매여 있던 멍에를 풀고, 주민들은 스스로 마차의 줄을 쥐고 자신의 어깨로 마차를 끌었다. 마을에 들어서자 집집마다 문과 창문이 활짝 열렸고 그 틈 사이로 어른과 아이 할 것 없이 온 동네 사람들이 몸을 내밀어 열렬하게 손을 흔들었다. 감사..

[제24편] 공리주의 개혁에서 사회주의 까지, 로버트 오언

영국의 성공한 기업가이자 공상적 사회주의자 로버트 오언(1771~1858), 행복의 역사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람이다. 당시 영국의 전형적인 공장들은 아동 노동 착취와 열악한 위생, 극심한 노동 강도로 악명이 높았다. 오언은 당시 관행이던 10세 미만 아동의 노동을 전면 금지하고 학교를 세워. 노동자 자녀들에게 무상 교육을 제공하고자 했다. 또한 노동자들의 실질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해 성인 노동자의 하루 작업 시간을 10시간 반으로 단축 했고, 공장 주변에 깨끗하고 저렴한 주거지를 보급하고 공동 상점을 열어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생필품을 공급했다. 이 과정에서 동업 자본가, 투자자들은 노동자들의 복지와 교육 투자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낭비라고 생각하여 반대했고 결국 소송과 경매로 이어졌..

[제23편] GDP가 올라가도 내 삶이 불행한 철학적 배경

토머스 제퍼슨이 독립선언서에 ‘행복 추구권’이라는 문구를 넣은 그 즈음, 영국 런던의 젊은 변호사 제러미 벤담은 정부가 취하는 모든 정책과 법률을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원칙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행복 계산법’은 다음 과 같다. 가난한 사람이 100만원에서 얻는 효용이 더 크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에게 준 100만원은 부자에게 준 100만 보다 더 가치가 높다는 식이다. 또는 부자에게 100만원을 주어서 사업에 투자를 하고 일자리를 늘릴 수 만 있다면, 부자에게 준 100만원이 더 가치가 크다. 귀에 걸면 귀거리, 코에 걸면 코거리이다. 결국 공리주의는 무엇이 옳고 좋은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얼마나 효율적인가라는 기술적 질문으로 대체해 버렸다. 만족감과 즐거움만을 행복의 본질로 보는..

08 슬로건이 증폭하는 프레임전쟁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깨달음은 단순한 격언을 넘어, 집단 언어가 가진 폭력성을 드러내는 지점에서 극대화된다. 이 현상을 가장 잘 집약하는 단어가 바로 슬로건이다. 슬로건의 어원은 스코틀랜드 게일어인 슬루아그고름에서 유래했다. 이는 군대의 함성이나 집단 함성을 뜻하는 말이다. 어원 그대로 슬로건은 본질적으로 이성적인 설득의 도구가 아니라 집단의 결속과 공격을 위한 전쟁의 외침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에서 복잡한 혁명 이론은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는 한 줄의 슬로건으로 표현된다. 이 말은 농장 안의 동물들에게 어떤 구체적인 지침이나 개념을 정확히 전달하지 않는다. 그저 지능이 낮은 동물들도 쉽게 외울 수 있는 집단 함성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슬로건이 확립되는 순간 농장 안의 사..

02. 죽어서도 회의에 출석하는 미이라 철학자

다음은 마이클 센델 하버드 교수가 ‘정의란 무엇인가’강연 중에 소개한 에피소드이다. 마이클 센델 교수는 벤담이 생전에 겸손함이 다소 부족한 인물이었다는 점을 짚으며, 기이하고도 흥미로운 전통일 뿐만 아니라 벤담이 남긴 공리주의 유산이 여전히 강렬함을 지적한다. 제레미 벤담(1748-1832)은 자신의 철학을 죽는 순간뿐만 아니라 죽은 이후에도 실천하려 했던 독특한 인물이다. 벤담은 유언장에 자신의 시신을 친구인 의사 토머스 사우스우드 스미스에게 맡겨 공개 해부학 강의의 교재로 사용하게 했다. 당시 영국 사회는 시신 기증에 대한 거부감이 심해 의학 발전이 정체되어 있었는데, 벤담은 죽어서도 자신의 몸을 통해 사회적 효용을 극대화하겠다는 공리주의적 신념을 몸소 보여준 것이다. 진짜 독특한 요청은 그 다음..

[제22편] 공리주의, 최대 행복의 의미

쾌락주의(Hedonism)는 행복(happiness)이 곧 좋은 것(good)이라고 규정한다. 이를 이어받아 공리주의는 "행복의 최대화 = 좋음의 최대화 = 도덕의 실현"라는 간단한 이치를 주장한다. 공리주의는 개인의 쾌락의 실현을 사회로 확장한 것이다. 개인적 차원에서 출발하는 쾌락주의가 개인이 느끼는 만족감에 집중한다면, 공리주의는 사회 전체가 얻는 기쁨의 총량을 고민한다. 내가 지금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을 먹고 깊은 만족감을 느꼈다면 그것이 바로 쾌락이자 선이다. 반면 공리주의는 이 케이크를 방 안의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방식으로 판을 키운다. 혼자 다 먹을 때보다 여러 명에게 나누어 주었을 때 사회 전체가 얻는 기쁨의 총합이 훨씬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두 사상이 말하는 행복의 본질은 ..

01 이순신 장군이 활쏘기 연습을 열심히 한 이유

인류학자들은 호모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경쟁에서 인류가 압도적으로 승리한 이유를 창의 차이로 꼽는다. 네안테르탈인의 창은 던지는 것이 아닌 찌름용 이었고, 호모사피엔스의 창은 던질 수 있는 창이었다. 이 차이가 지구의 지배자가 바뀌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던지는 창 이후 활의 발명은 다시 사냥과 전투의 풍경을 다르게 바뀌게 한다. 활의 가장 큰 장점은 압도적인 사거리이다. 원거리에서 적을 공격하고 접근을 막는 능력이 뛰어나다. 또한, 숙련된 궁수는 원거리에서도 투창보다 비교적 정확도를 유지할 수 있다. 투창은 사거리가 활에 비해 훨씬 짧은데다가, 궤적이 높고 투사체가 눈에 잘 띄어 멀리서 던지면 피하기가 쉽다. 자신의 안전을 확보하고 적이나 사냥감을 공격하려는 효율성에 대한 욕구는 결국 활이 말과 결..

[제21편] 흄과 벤담, 효용으로 행복에 접근하다

데이비드 흄(1711~1776)은 인간을 이성보다 감정과 정념에 의해 움직이는 존재로 파악했다 .감정을 이성으로 다스려 능동적인 기쁨을 찾으려 했던 스피노자의 방법론과 달리, 흄은 행복의 근거를 관습과 전통 속에서 형성된 도덕 감정에서 찾았다. 이성은 감정을 이끄는 주체가 아니라 감정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돕는 보조적 도구에 불과하다. 따라서 행복 역시 고정된 도덕 법칙이나 이성적인 계산이 아니라 감정의 만족과 깊은 관련이 있다. 흄이 생각한 행복의 핵심 조건은 마음의 평온과 활력의 균형이다. 인간은 지나친 격정이나 불안 없이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면서도 삶에 대한 흥미와 활력을 잃지 않을 때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흄이 바라본 행복은 초월적인 진리를 깨닫거나 엄격한 금욕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다. 일상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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