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파묘 Exhuma, 2024

켓세라세라 2024. 3. 28.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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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곡성은 한국인의 심리원형, 무속 무교를 소재로 해서 사회학적인 접근을 한다. 반면 영화 파묘는 반일 종족주의까지는 나가지 않더라도, 한국인의 무의식에 내재된 반일을 다시 한번 확인 시켜 준다. 풍수지리와 무당 굿은 교묘한 장치일 뿐이다

출처 : 다음 영화

여우가 호랑이 허리를 끊었다는 비유. 어설픈 지도에 동물 형상을 대입한 조악한 풍수지리 인식의 결과이다. 친일파로 전향하기 전 최남선 선생이 한반도를 토끼로 생각하는 일본에 대항해서 호랑이 모양이라고 주장했는데. 정작 일본 측에서는 한반도 형세는 일본 열도를 겨누는 흉기, 내지 팔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역사학계에서 논란이 있지만, 또는 심리적으로 불쾌함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고대 일본 왜()가 한반도에서 군사적 활동을 한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신공왕후 전설이야, 전설로 치면 되지만, 신라 초기 무수히 많은 왜병과 왜인들의 신라 공격은 마치 왜가 신라 국경 붙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자주 일어났다. 신라가 굴욕적이지만 인질을 왜에 보냈던 것도 사실이다. 비록 임나일본부설이 허구에 지나지 않더라도 말이다. 광개토대왕은 내물왕의 구원 요청에 대한 구원을 포함해 두 번이나 왜병을 한반도에서 격퇴한다. 왜는 백제의 용병으로 기용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강력한 고구려 군대에 맞짱 뜰 정도로 군사력이 만만치 않았다. 그 이후 백제왕 전지왕이나 동성왕 무령왕은 왕 등극 때 왜병의 호위를 받아 귀국했다. 이 시기 영산강 유역에 전방후원분, 장고형 무덤, 이른바 일본식 무덤들이 만들어 지는데, 왜국 장수의 무덤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후 일 천명 정도의 왜병이 백제성왕의 관산성 전투에같이 참여하기도 하고, 백제 부흥운동 시기 백제구원을 위해 백촌강 전투에 3만명 이상이 파병되었지만, 당과 신라 연합군에 의해 패퇴한다.

그리고 왜는 국호를 일본으로 고치고, 한동안 자신들만의 역사를 열도에서 만들어 갔다. 고려 원의 침공이 있었으나 나름 선방했고, 고려 말에 대규모 왜구 침공 패악질로 다시 한반도 역사에 등장한다. 그리고 임진왜란, 그리고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통한 한반도 병합. 그러니 왜나 오랑캐나, 왜놈이나 되놈이나. 한국인의 심리 원형에 흉악한 사무라이 대장, 장수가 악당 이미지로 등장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하겠다.

오랑캐에 짓밟힌 굴욕감을 박씨부인전과 같은 정신승리로 이겨내려고 했던 것과 유사하게 일본 황실이 백제계라든가, 가야계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일본 제국주의가 내세운 내선일체의 스토리와 같아지는 이상한 논리가 형성된다. 어차피 논리가 뭔 상관이랴. 한해에 700만이나 일본으로 떠나는 여행객들. 이들에게 친일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도 웃기거니와, 근대 일본, 현대 일본으로부터 영향 받은 대중문화의 영향들. 왜색들이라고 딱지 붙이며 거부감을 선동하는 것도 마땅치는 않다.

그래도 다시 한번 영화 파묘를 통해 일본에 대해 심리적으로 방어적인 한국인의 심성을 엿본다. 또는 호시탐탐, 틈만 나면 정한론을 들먹였던, 일본 제국주의 리더 지식인들. 또 생각해 보면 그들의 본향, 백제 출신이든, 가야 출신이든, 신라 고구려 출신이든, 아니면 고조선 마한 시기에 열도로 쫒겨난 이들이거나 먹고 살기 위해 건너간 이들이, 그들의 본 고향으로 돌아오고자 하는 마음이 열도인들에게 있다고도 생각해 보면,

영화 파묘에 등장하는 사무라이 대장의 이미지 만이 일본을 대표한다고만 볼 수 없다. 더구나 일본풍 식당, 이자카야에 대해 매국노가 많다는 인기 양궁스타의 말은 참 친일파 되기도 쉽고, 만들기도 쉽다는 생각을 잠깐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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