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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The Boy and the Heron, 君たちはどう生きるか, 2023

켓세라세라 2023. 10. 31.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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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한반도 대표 청동기 문화로 소개되는 고인돌이 보인다. 반도와 열도에 걸쳐 살았던 사람들이었겠지만, 역사 전개는 상당히 다르게 진행된 두 나라 사람들, 가깝지만 생각 보다 먼, 마음을 열면 생각보다 가깝고 친근한 이웃이다. 연인원 700만명 일본여행을 하는 지금은 더구나 더 그렇다.

출처 : 다음영화

시차를 두고 고도 경제 성장기를 보낸 이후, 고령화와 인구 감소, 지역소멸, 저성장기를 경험하기에 갈수록 닮아가는 듯해서 더 씁쓸하기까지 하다. 20년 30년 차이로 일본을 따라간다는 한국, 재패니피케이션(일본식 장기침체)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는 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일본으로부터 배운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 사람들의 기질과 특성의 차이는 중세시대, 고려-조선시대와 카마쿠라막부-에도 막부 시대에 형성된 듯하다. 중앙집권과 지방분권, 문관통치와 사무라이 통치에 의한 차이, 대륙과 중국과의 관계가 다르게 진행된 것도 지리적인 반도와 열도의 차이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지배계층과 피 지배계층과의 관계도 다를 수밖에, 일반적으로 강자, 승자에 포획된 일본으로 이해하고, 조선은 약자와 패자에 관대한 것으로 이해한다.
언어에서 수동형 피동형이 발달한 일본어, 원래 수동태가 없는 한국인의 낙관적인 활달한 민족성도 여기서 기인한다. 신분상승의 열망을 한반도에서는 일정정도 열어 주었던 반면에, 일본에서는 신분이 정말 고착화, 영구화되는 시도를 했다. 아마도 외적의 침략을 주기적으로 받은 한반도의 지배계층 입장에서는 그 만큼 피지배계층의 협조를 받으려면, 그 만큼 노비나 평민들의 요구를 일정 정도 받아들여야 했던 것이리라. 죽고 죽이는 일본 전국시대, 농민 반란을 일으켜도 사무라이들에 의해 잔인하게 진압당했던 것이 일본 민중들이다.

귀여운 와라와라, 출처 : 다음영화

원래 일본 땅에는 야만인이 살았다. 이른바 에미쉬라고 하는데, 선사시대부터 거주했던 죠몽인들이다. 이들을 정복 정벌한 한반도에서 이주한 야요인들, 천황으로부터 하사받은 쇼군이라는 직책, 정이대장군이다. 동쪽과 북쪽의 오량캐를 정복한다는 의미이다. 에미쉬에 이어 현재 일본에는 약 200만명 이상의 부락민들이 존재한다. 우리로 따지자면 소잡고 돼지 잡는 백정, 피혁 전문가 출신성분이다. 이들은 결혼, 취업등에서 차별을 받는 이들이다. 과거에는 부락민을 에타라고 하는데 더러운 놈이란 뜻이다. 또는 닌가이, 外人라는 욕으로도 부른다고 한다. “닝겐이 아니무니다!?”
어디 에미쉬와 부라쿠민만 있으랴, 재일조선인 이른바 자이니치 조센징이 있다. 그리고 오키나와인, 최근의 외국인 이주 노동자들, 비록 겉으로는 닌가이로 부르지는 않지만, 코코로 마음속으로 혐오하고 차별하는 것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일본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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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지키 하야오 감독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주인공 이름이 ‘마히토’, 眞人, 진짜 인간 이란 뜻은 이런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진인 외인 구분지으며 살지 않는 이가 진짜 인간이라고...
영화에 등장하는 환상의 세계에 존재하는 새들, 왜가리, 펠리컨, 앵무새, 타자화된 이질적인 존재들과의 공존 공생. 펠리컨이 양키, 서양인들처럼 느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한국사회에서 외인, 닌가이는 누구일까. 여전히 우리사회에서도 이주노동자, 다문화가정인들, 성소수자, 탈북민, 혹은 지역감정으로 타 지역 사람으로 비하받는 이들, 이 모든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혹시나 과거 양반귀족과 같은 상류층의 삶을 살지 못하는, 정상성을 향한 경쟁에서 밀린 이들, 스스로 헬조선에서 노비와 노예로 자처하는 자괴감을 느끼는 사람들,

출처 : 다음영화

진짜 인간, 마히토를 미야자키 감독은 소망한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이어 이번 영화에서도 적극적인 노인들의 활약과 역할이 필요하다는 메시지가 읽혀진다. 그 외에도 숨겨진 상징, 이미지, 메시지 해석을 각자가 해 보기 좋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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