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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 4

파묘 Exhuma, 2024

영화 ‘곡성’은 한국인의 심리원형, 무속 무교를 소재로 해서 사회학적인 접근을 한다. 반면 영화 파묘는 반일 종족주의까지는 나가지 않더라도, 한국인의 무의식에 내재된 반일을 다시 한번 확인 시켜 준다. 풍수지리와 무당 굿은 교묘한 장치일 뿐이다. 여우가 호랑이 허리를 끊었다는 비유. 어설픈 지도에 동물 형상을 대입한 조악한 풍수지리 인식의 결과이다. 친일파로 전향하기 전 최남선 선생이 한반도를 토끼로 생각하는 일본에 대항해서 호랑이 모양이라고 주장했는데. 정작 일본 측에서는 한반도 형세는 일본 열도를 겨누는 흉기, 내지 팔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던 모양이다. 역사학계에서 논란이 있지만, 또는 심리적으로 불쾌함을 유발하기도 하지만, 고대 일본 왜(倭)가 한반도에서 군사적 활동을 한 것은 부정하기 어렵..

영화읽기 2024.03.28

역사전쟁, 광개토대왕과 팔로군

400년 광개토대왕은 남정을 결행한다. 고구려에 원군을 요청한 신라 나물왕에 대해 삼국사기는 “왕이 타던 말이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렸다”고 신라의 위기를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광개토대왕은 기병과 보병 5만을 동원해서 신라를 침공한 왜, 혹은 가야세력을 토벌한다. 무시무시한 고구려 군대는 쉽게 왜병을 추격하며 지금 부산지역인 종발성에 이른다. 가야 연맹은 이 때 실질적으로 망했다. 만약 - 역사에서 만약 IF란 없다. 그럼에도 - 고구려가 신라를 구원하지 않았으면 한반도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신라가 한반도 패권을 잡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야의 최첨단 하이테크 강철과 맞교환한 왜의 용병들, 백제로 이어지는 해상 연맹의 힘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후 장보고의 청해진 세력의 숙청, 한반도 폐쇄된 영..

역사이야기 2023.09.04

광개토대왕의 고구려 군대가 불러일으킨 정치 변동

어떤 이는 말한다. 광개토대왕이 백제를 공략하고 신라를 구원하면서 한반도에서 왜병을 쫒아내고, 덤으로 가야 제국을 무력화 시켰을 때, 신라와 백제를 멸망시키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글쎄. 광개토대왕이나 그 당시 고구려인들 입장에서는 이미 한반도 통일, 제패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나의 정치체를 아예 없애는 비용, 적당히 인정하고 이용하는 기회를 생각하면 고구려 제국에 편입된 속국으로 백제와 신라를 인식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미 신라는 고구려 속국이 된 상태고, 백제는 같은 부여족이 지배층인데다, 그 경기 충청 호남 지역의 그 생산력에 비례하는 힘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완전히 굴복하고 정복하기에는 고구려의 힘이 부족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더구나 이후 백제의 행보, 야마토 정권을 단순히 군대와 ..

역사이야기 2023.03.13

고구려의 1차 남진과 왜국의 백제 속령화

낙랑과 대방의 멸망 이후 4세기 근초고왕 시기에서 백제와 왜의 첫 교섭, 그리고 7세기 663년 백촌강 전투까지 이 땅 한반도와 열도 사이는 뜨거웠다. 그 사이에 낀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왜 사이의 이합집산의 역사는 드라마틱하다. 한국 교과서에서 정답처럼 외우는 각 나라의 전성기는, 백제는 4세기, 5세기는 고구려, 6세기는 신라가 전성기였다. 일단 4세기를 관통하는 야마토의 왕은 인덕천황인데 생몰연대로 따지면 257년생, 399년 졸이니까. 142세를 살았다는 말도 안되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어쨌든 오사카시에 있는 일본 최대의 전방후원분 무덤의 주인공으로서 오사카 교토 지역의 경제개발, 농지확보등의 업적이 있는 인물이다. 알다시피 근초고왕은 371년 평양성 전투에서 고구려왕 고국원왕을 전사시..

역사이야기 2023.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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