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광개토대왕의 고구려 군대가 불러일으킨 정치 변동

켓세라세라 2023. 3. 1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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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말한다. 광개토대왕이 백제를 공략하고 신라를 구원하면서 한반도에서 왜병을 쫒아내고, 덤으로 가야 제국을 무력화 시켰을 때, 신라와 백제를 멸망시키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글쎄. 광개토대왕이나 그 당시 고구려인들 입장에서는 이미 한반도 통일, 제패 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나의 정치체를 아예 없애는 비용, 적당히 인정하고 이용하는 기회를 생각하면 고구려 제국에 편입된 속국으로 백제와 신라를 인식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미 신라는 고구려 속국이 된 상태고, 백제는 같은 부여족이 지배층인데다, 그 경기 충청 호남 지역의 그 생산력에 비례하는 힘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완전히 굴복하고 정복하기에는 고구려의 힘이 부족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더구나 이후 백제의 행보, 야마토 정권을 단순히 군대와 물자보급 기지로 활용하는 것을 넘어서서 혼인동맹을 통한 연합정권으로의 발전은 고려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일본 열도의 생산력 큐슈와 기내지역에 한정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생산력은 고구려나 백제 신라 각 지역의 쌀 생산력과 맞 먹지 않았나 싶다. 5만의 기병과 보병을 동원한 고구려도 대단하지만, 백제부흥군을 돕기 위해 파병된 왜군이 3만명이니까. 이들을 먹고 재우는데 필요한 식량과 기타 무기 제조에 드는 비용을 생각해 보면 야마토 정권의 실력이 어떠한 지는 알 수 있으리라. 13세기 고려를 침공한 몽골군도 최대 3만을 넘지 않았다고 보니까.

그리고 광개토대왕이 39세 로 단명한 바, 어릴 적부터 동서남북으로 원정 다니면서 건강이 안 좋았을 가능성도 있다. 이름도 담덕인바 덕(), 어진 마음을 널리 알리는 이이다. 이름도 멋있다. 5세기 선진 고구려 군대의 한반도 압박은 의외로 각국에 큰 변화를 불러 온다. 먼저 고구려 속국이 된 신라는 나름대로 고구려의 압제로부터 독립을 도모하기 시작하고, 가야는 정치체가 와해 된 후, 신라와 백제 사이에서 생존의 압박을 받는다. 그 과정에서 야마토의 가야세력은 자신의 원 고향에 대해 일정정도 연고권과 지분을 주장하면서 임나가야의 부흥을 도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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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과정에서 발생한 흥미있는 역사 기록이 남겨져 온다. 일본서기 응신 14년 서기 283년 기사인데, 백제인 궁월군이 신은 저희 나라의 인부(人夫)120()을 이끌고 귀화하고자 하였으나 신라인이 방해하여 모두 가라국(加羅國)에 머물러 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갈성습진언(葛城襲津彦)을 보내 궁월군의 인부를 가라에서 불러들이도록 하였으나 3년이 지나도록 습진언이 돌아오지 않았다.” 한다. 결국 또 다른 장군이 출동해서 문제를 해결한다. <동북아역사넷, 일본서기> 이와 같은 내용은 신찬성씨록 413년 기록으로 127현 인부라고 한 것만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같은 역사적 사실일 것이다. 120년을 올린 것으로 보면 403년 기록이 되고, 이는 고구려군의 영락 10년 서기 400년의 기동과 관련한 백제인들의 일본 열도 이주의 역사일 듯 싶다. 광개토대왕비에는 한강 이북 개성과 황해도 지역에서 차지한 성 64개 지역의 이주민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갈성습진언(카츠라기노 소츠히코)이란 인물은 재미 있는 게, 야마토왕의 말을 듣지 않는 왜 장군이다. 신라를 공격하라고 보냈더니, 신라의 미인계에 걸려 오히려 가야를 공격해서 가야 왕과 주민들이 왜로 도망하게 했던 이이다. 왜왕의 미운털이 박힌 인물일 것 같지만, 왜왕의 권력에 맞먹는 힘이 있었는지, 왜왕도 어쩌지 못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학계에서는 428년 백제의 전지왕인지 비유왕인지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 누이 신제도원을 야마토 왕에게 보내 섬기게 했다. 본격적인 백제와 왜의 결혼동맹 시작인 것으로 보인다. 왕국의 유지와 관련해서 고모, 이모, 삼촌이 양쪽 왕가에 포진해 있다면, 사촌들간의 협력과 이반의 정치가 이루어질 것이다. 적어도 위기 상황에서는 힘을 합쳐서 난관을 뚫어나가기에는 적합한 정치행위일 것이다. 한바탕 한반도를 휘 저어 노은 고구려의 힘은 거련(巨連), 통크게 아버지를 잇는 장수왕의 등장으로 또다시 시련의 5세기를 보내게 된다. 적어도 백제 왕가에게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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