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이야기

정치의 종교화, 미디어가 만든 집단극화현상

켓세라세라 2022. 5. 31. 10:55
반응형

지난 대선을 치르면서 조금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는가. 미디어에서 증폭하는 착시현상일수도 있지만, 각 진영에 속한 이들 중에서 일부 똘똘 뭉친 이들이 상대방 진영 후보를 누가 누가 잘 폄하하는가 경쟁하는 것 같아서 말이다. 선거는 경쟁이고 이겨야 하는 전쟁임을 알지만, 선택과 판단의 근거가 너무 하찮고, 비루하기만 하였다.

 

멀쩡한 사람도 정치판에 들어가면 이상해진다는 말이 있긴 하고, 또는 정치의 본질이 상대방 헐뜯기, 욕하기임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비난과 비판도 그 근거가 있어야 설득력이 있지 않겠는가. 무대뽀 비난이 난무하는 상태에서 한국사회를 이끌어 나가야 할 솔직 담백한 토론, 숙의는 뒷전으로 제껴젔다.

 

그래서 그런가, 강준만 교수는 더 나아가서 아예 정치를 종교처럼 생각하자고 한다. 한국사회 종교는 각각 달라도, 서로 개 닭보듯이 하면 차라리 낫다는 거다. 또는 종교얘기는 설날이나 추석 명절에 친한 친구나 친척하고 하지는 않듯이 말이다. 한국사회 정치 집단극화현상이 심각하니까, 이제는 균형이론으로 사회를 바라보자, 어차피 논의도 설득도, 숙의도 안되니까. 시니컬하다. 쿨하다. 체념인가? 어차피 숙의와 숙고가 사라진 민주주의 한국사회에서 최선의 대안으로 정치를 종교처럼 생각하자는 것은 부드러운 해법이란다.

 

종교의 정치화가 실현되는 사회보다는 낫겠지만, 정치는 정치고 종교는 종교다. 건강한 신체라면 각각의 신체 장기가 서로 잘 협조해야 한다. 이른바 사회학에서 말하는 기능론적 사고방식이다. 갈등론에 의하면 사회영역에서 불만과 불평등에 기인한 갈등은 사회발전 변화의 원동력이다. 균형과 통합, 안정과 조화의 영역과 강제와 불평등극복, 긴장과 변화는 사회를 구성하고 이해하는 두 축이다. 가급적 싸우지 마. 안싸우고 평화롭게 지내는 걸 원하는게 사람이다. 아니야 사회는 문제가 있으면 고쳐야 하고 고칠려고 하면 싸우는 것도 필요해. 둘 다 맞는 생각이다.

 

선거소음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크다고 한다. 성능 좋은 스피커에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잘 들리지도 않은데, 고래 고래 소리 지르고, 자신들만 흥겨운 음악을 틀어놓는다. (생활 불편을 호소하는 전직대통령도 피해자다) 

 

고성능 앰프와 스피커는 현실에만 있지 않다. 항상 문제를 증폭하는 메신저 역할을 하는 지식인들도 그렇거니와, 정치 가쉽 뉴스만 다루는 TV방송, 싸구려 유튜브와 SNS 미디어에서도 시끄럽게 정치 문제는 증폭이 된다. 차분히 따져 보면 별 것도 아닌 메시지를, 이들 인플루언서랍시고  메신저는 가쉽을 증폭하고 미디어 수용자는 이것을 다시  SNS 미디어에서 확산한다. 그러니 사회적 소통은 더 어려워진다.

 

 SNS, 쳇방, 집단 톡방에서 이루어지는 언어폭력에 가까운 메시지의 과잉과 겁먹고 불안에 떠는 대중들의 여론을 아예 작정하고 조종하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어차피 불통과 단절이 목적이었으니까, 일방적인 감정의 배설만 이루어진다. SNS상에서 벌어지는 학교 폭력, 문자 폭탄, 심상치 않은 현상들이다. 이들의 문제는 미디어를 내려 놓고, 얼굴 맞대고 대화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에 있다. 미디어가 없는 순간, 스마트폰이 없는 순간, 이들은 무력화 된다.

 

왜 자신이 어떤 정치인을 좋아하고, 또 그렇게 극렬하게 증오하는지, 이유를 500자 이상 한번 써보라. 그리고 주변인들에게 한번 품평해달라고 해보라.

 

자신들이 없을 것이다.

 

소수의 참여자들이 여론을 주도하는 단체톡방 쳇방, 그러니까. 비대면과 거의 익명에 숨어서, 자신과 견해가 조금만 달라도 비논리적 비방, 허위사실 유포, 욕설이 난무하는 것이리다.

 

인터넷이 보급되는 초창기 새로운 미디어로 인해 권력이 시민사회로 분산되고, 정치참여가 활발해져서 직접민주주의에 근접한 민주주의가 실현될 것이라고 한 이들의 주장은 적어도,  "틀렸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