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통합사회

통합사회 : 행복의 의미와 기준5

켓세라세라 2024. 4. 26. 10:29
반응형

 [10통사1-02-01]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행복의 기준을 사례를 통해 비교하여 평가하고, 삶의 목적으로서 행복의 의미를 성찰한다.  (교육부 사회교육과정 2022-33호)
강하면 부러지기 쉽다. 일상생활의 지혜다. 기존 사회질서를 옹호하는 생각에 대해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을 열어놓지 않으면, 사회의 카스트화는 가속화된다. 경직된 사회체제에서 새로운 생각은 싹트기 어렵고, 사회 구성원들의 삶은 질곡으로 빠진다. 문명을 이루고 사회가 복잡해지고 고도화되면서 사회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압박에서 다시 돌파구를 찾아내야 한다.
‘무엇을 하려거든 가급적 하지마라’, 공자를 떠나보내면서 노자가 공자에게 말한 충고의 취지이다. 자신들은 탄탄한 사회경제적 이익 위에서 무위도식하는 것들이 이익을 탐하지 말라는 등의 헛소리나 하는 것에 대한 민중의 반감은 다양하게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사마천 뿐만 아니라 많은 백가들, 묵가집단과 노장 사상을 따르는 이들에게 유가는 대체로 예비 권력자들이었고, 법가 입장에서는 입바른 소리나 하는 예비 행정가들일 뿐이었다. 공자와 맹자가 주장한 도덕적 의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세속적인 사람들의 이익추구, 욕망, 행복과 도대체 어떤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공자는 이익을 부정적으로 보았지만, 정치와 도덕영역에서 성취, 성공에 따르는 이익을 뭐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자신만의 사욕 추구에 대해서는 반감을 가졌지만, 군주가 백성의 이익을 위한다거나 국가 지역 공동체의 이익에 대해서는 열려 있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후 도덕적 인간에 대한 열망은 ‘유가의 파수꾼’ 맹자에 의해 계승되는데, 맹자는 타고난 강력한 인간의 욕망에 대한 절제내지 거욕(去慾), 욕방에서 벗어날 것을 주장했다. 이는 약한 도덕적 욕망과 강한 물질적 욕망 사이에 균형을 맞추려는 생각이었다. 다른 방향으로 순자는 욕망을 유도하거나, 잘 길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욕망에 대한 유가의 입장은 결국 사회 내 개인들의 삶은 관리 통제되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록 그렇게 보일지라도 모든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없다는 현실, 욕망의 제약이나 제어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맹자의 생각도 일리가 있으나 지금 현대사회에서 순자의 아이디어가 현실 적합도가 높아 보인다. 특히 물질적인 성취, 원하는 것을 이루면 행복하다는 단순한 생각이 지배하는 한국사회, 볼거리와 즐길 거리를 경쟁적으로 SNS에 올리고 자랑하는 것을 행복한 것처럼 포장하는 사회에서 차원이 다른 즐거움, 배움과 학습의 즐거움, 많은 사람들과 연대와 우정을 나누는 행복에 대한 학습이 필요한 것처럼 보인다. 게임 중독이나, 마약, 도박, 알콜 중독, 살벌한 배금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에 더 재미있고, 유익하며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더 행복한 향유해야할 문화와 여가 생활에 대한 도욕(道欲)과 양욕(養欲), 서로 잘 길러주고 이끌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일정한 한계, 도량 분계(度量分界)를 지키면서 말이다.
이처럼 이익 추구와 관련된 행복과 욕망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 희노애락애오욕의 존재, 먹고 마시고 자고 사랑하고 좋은 것을 탐하는 인간에 대한 이해, 자신에 대한 이해, 타인에 대한 이해, 관계에 대한 이해, 사회에 대한 이해를 나름 자신 만의 생각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