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통합사회

통합사회 : 행복의 의미와 기준7

켓세라세라 2024. 4. 28.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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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통사1-02-01]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행복의 기준을 사례를 통해 비교하여 평가하고, 삶의 목적으로서 행복의 의미를 성찰한다. (교육부 사회교육과정 2022-33호)

유소년, 청장년 시절에 크던 작던 성취야 말로 인간이 기쁨을 느끼는 원천이다. 마음 졸이며 집중해서, 추적과 연구, 고민과 결단에 의해 사냥에 성공했을 때, 성공적으로 매복과 기습으로 적을 물리쳤을 때 돌아오는 보상, 시험에 합격했을 때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소를 키웠는데, 쌍둥이 소가 태어나면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기뻤을 것이다. 가뭄과 홍수 등의 자연재해로 마을에 흉작이 들어도 내 논과 밭의 작물이 풍성한 결실을 이룬다면 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 인정과 칭찬, 구체적인 물질적인 보상이 아니더라고 괜찮다.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사회적 인정에 목숨까지 내 걸 정도로 명예또한 중요한 삶의 목표로, 사회적 가치로 발전한다. 사회내의 개인의 성취, 그것이 전쟁터이든, 경제적인 활동이든, 학문 예술분야든 간에 개인의 성취가 현대적인 의미에서 성공이란 말로 치환된다하더라도 일상생활에서 작은 성취를 꾸준히 경험하는 것은 정신건강, 육체 건강에 이롭다.

 

대부분의 개인의 성취는 운과 관련되어 있어 보인다. 구약성경의 이 신에게 아무리 자신의 행복한 권리를 주장한다고 해도 신의 섭리, 무소불위의 권능, 절대 권력자에 의한 선택에 불과한 자신의 성취 주장은 왜소화되기 마련이다. 욥기의 교훈은 결국 군 말, 말아라, 변화무쌍한 현실 변화에 네가 이루고 성취한 것 별거 아니다. 그냥 운일 수도 있고, 알지 못하는 원리에 의해 그냥 선택 결정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겸허해질지어다.

원래부터 운과 사회적 성취, 성공 간에는 분명한 경계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운은 운일 뿐이고 성취는 성취일 뿐인데, 운과 성취의 경계를 뇌가 명확히 구분지어서 판단하지 못한다. 그러니까 사람의 마음은 운에 의한 성취와 개인의 역량에 의한 성취를 그렇게 구별하지 않는다. 운에 의한 성취도 실력으로 퉁 쳐버리고 마는 사례가 도박이다. 돈을 따면 자신의 실력이 발휘된 것이고, 돈을 잃으면 재수와 운이 따르지 않는 다는 생각은 중독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자신은 하늘이 보호해 주는 성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에 행운이 항상 따르고, 하는 일 마다 잘 된다. 그러니 나를 믿고 따르라. 추가로 내 자손들도 나와 같이 대우하라최고 지배계층에 오른 이들이 자신의 특별함을 포장하기 위한 고전적인 수법이다. 그 밑의 귀족 계급도 조상의 성취가 곧 자신에게는 운이지만, 이를 영원히 지배계층으로 인정받기 위해 진짜 뻐다구, 혈통 등을 강조하는 수법도 동원되었다. 동 서양 공히 그렇다.

그럼에도 일반적으로 개인의 이룬 성취는 대체로 구체적인 사회적 보상으로 이어진다. 전쟁터에서 이룬 성취, 전공(戰功)이 그러하다. 누구나 생각하는 정의이다. 귀속 세습적인 사회적 지위는 애초부터 정의롭지 않다. 능력주의란 것도 원래는 혈통주의와 선민사상, 신분제 계급제도에 반대되는 진보적인 것이다.

문제는 사회가 보상으로 나눠줄 것이 별로 없을 때 발생한다. 사회 경쟁의 격화, 혼란과 분열, 불의(不義), 무도(無道), 불인(不仁)의 일상화인데, 사회의 행복과 개인의 행복을 위협하는 것들이다. 능력주의에 대한 논란은 결국 개인의 성취와 운, 사회적 보상 간에 불일치가 야기한 문제이다. 지금 전까지 사회계약, 비록 계약서는 없지만, 성실히 학위를 따는 성취를 이루면 대충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는 보상이 뒤 따른다고 알고 노력했다. 그러나 지금부터 그 성취는 중요한 게 아니고, 지금부터 네가 이룬 구체적 결과로 다시 증명하란다. 지금 한국사회 젊은이들, MZ세대가 뿔 날 만하다. 이 개인의 기대와 사회적 보상간의 불일치를 어떻게 해결한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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