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고려 거란 전쟁 관람기5

켓세라세라 2023. 12. 24.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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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이 2차 침략을 할 시기, 고려 현종은 경기도 안성, 충청도 천안, 전라도 익산을 거쳐 나주로 피난을 떠난다. 어린 왕이 도망가는데, 기가 막힌 일들이 벌어진다. 파주 쯤에 이르렀을 때, 도적들의 습격을 당한다. 장군 지체문이 활을 쏘아 쫒아내기를 반복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지금 도봉구에 해당하는 창화현에 이르러서 지방 아전이 무리를 끌고 와서, 도움이 필요한 현종 일행들에 대해 약탈을 시행하려고 하였다. 또한 신하들도 왕 몰래 안장을 팔아넘기거나, 도망치는 일들도 벌어졌으니, 고려 황제, 왕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지채문 장군 역 한재영, 출처 : KBS 홈페이지

이른바 고려 초기만 해도 지역 토호세력, 호족의 힘은 여전히 강했고, 이들이 왕의 도망 무리에 대해 협박을 해대며 약탈을 시행하기 까지 하니, 지금 관점이나, 유교에 충실한 관점에서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지채문, 하공진 같은 강직한 신하들이 있어, 위기를 넘기곤 했지만, 중앙집권 체계가 제대로 자리 잡지 않은 고려 초기의 상황에서 그 당시 많은 이들은 왕조와 국가에 대한 충성이 약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몽고 2차 침략기에 평양에 파견된 대장군 민희와, 관료 최자온은 72명의 다루가치, 몽고 관료를 살해하기로 모의한다. 무인 정권 권력자 최우가 은밀히 명령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사실이 평양 백성들에게 알려지고, 그 전에 잔인한 몽골군에 의한 살육에 공포심을 느낀 서경사람들이 반역을 일으켜, 관리를 잡아가두는 일이 발생한다.

하기사 묘청의 난, 조위총의 난, 김보당의 난등이 한반도 서북면에서는 계속 있었고, 북방민족과 전쟁을 하면, 제 일선에서 그 피해를 감당해야 할 사람들이 평양 근처의 사람들이었다. “쥐뿔도 해준 것도 없으면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더 나아가서 항복하거나 적에게 협력하면 배신자니 뭐니 하는 정권 상층부에 대한 반감이 어찌 사람들에게 없겠는가.

임진왜란 때도 그렇다. 어떤 의병장의 기록에 의하면, 아랫것들이 말을 들어 쳐먹지 않아서 곤란해 한다. 되려 일본군을 환영하거나, 길을 안내해 주거나 하면서, 더 나아가서 일본군에 종군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하니까. 영화나 드라마에 보이는 애국애족하는 민중, 백성이란 환상인 것이다. 선조가 의주로 피난 갈 때, 경복궁을 태운 것도 노비들였다, 강항이라는 분의 기록에 의하면, 일본군에 의해 납치된 수천명의 도공들에게 조선으로 돌아가자고 했을 때, 거의 모든 이들이 조선으로 돌아가기를 거부했다는 기록도 있다. 사람 취급 안해주면서 착취하는 조선 보다, 그래도 전문가 대접해주면서 먹고 살기 편하게 해준 일본 땅이 더 좋은 것이다.

오랑캐와 왜적의 침략에 맞서 민족의 절체 절명의 시기에 일치단결해서 위기를 극복했다는 서사는 거의 뻥에 가깝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국가의 체계와 이데올로기가 개인과 사회, 문화의 원리로 자리 잡으면서, 국가의 존립과 이익에 반대하는 배신자들을 처단해야 한다는 정서가 강해졌을 것이다. 엄밀히, 솔직히 이야기 하면 국가를 책임지는 이들, 왕과 귀족의 이익과 내 이익이 같을 리가 없는데, 일방적인 충성을 요구한다는 것은 허망한 일이다.

최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병력부족을 경험하고 있다. 20~30대 우크라이나를 떠난 병역기피 젊은이들이 180만명에 이른다고 하니. 40대 이상 중 장장년층으로 신병이 채워지는 현실은 암울하다. 그것도 외국을 떠날 경제력이 없는 가난한 농촌의 가장들이라니까. 병을 달고 생활하는 이들이 뭔 전투를 제대로 하겠는가.

하마스도 그렇고, 이들 우크라이나 인들에게도 의문이 든다. 지난 러시아와의 관계에서 그렇게 강경노선을 주장했던 이들, 독립하는 것 까지는 괜찮은데, 우크라이나 인의 20%나 되는 러시아인들에게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 이들. 결국 서방과 미국의 대리전쟁을 하는 꼴이 되어버린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 여전히 강경한 말에 걸 맞는 책임을 지고 있는가.

누군가가 공동체를 책임지겠다고 한다. 항상 말로만 그런 이들이 문제다. 칠천량 해전에서 조선 수군을 말아먹은 원균이 그러하다. 자신의 이익에 위해가 되는 상황이 온다면 가장 먼저 빠져나갈 이들. "왕께선 저의 이름과 얼굴을 아십니까?"라고 하면서 모른 척하는 고려 현종에 대해 오히려 화를 내는 고려 창화현 아전, ‘나는 너를 아는데, 너는 나를 모르는 우리는 남이다라는 당당한 입장이다. 쿨하다.

물론 책임감 그 자체인 유교 이데올로기의 화신 같은 이순신 장군 같은 분도 그렇지만, 이런 쿨한 이들 또한 역사 발전과 사회 변화의 한 축으로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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