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 공감의 조건은?

켓세라세라 2022. 5. 23. 17:23
반응형

81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주연상 수상작 /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촬영상 후보작

출처 나무위키

 

유죄인가, 무죄인가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에 등장하는 한나 슈미트는 문맹이다. 주인공 한나 슈미트는 아우슈비츠 여성경비원으로 유태인 학살에 가담한 죄로 법정에 선다. 나치스 유태인 학살의 방조자, 부분적 책임자로서 자신의 행동으로 겪게 되는 유태인들의 슬픔과 고통을 상상하지 못하고 그들과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

 

그런데 한나 슈미트에게 학살의 책임을 묻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데다, 자율적 사고의 정도가 약하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원래 개인은 권위나 규칙, 규제와 같은 외부의 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그녀는 무죄다.

 

아니다. 한나 슈미트는 글을 읽을 줄 모른다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그렇게 유태인 학살에 직접 가담했던 실행자였던 것을 자신을 부끄러워 하지 않는다. 그러나 결말에는....

 

노동계급 출신으로 자신이 구조맹, 역사맹, 사회맹으로 길러졌고 사회적인 시스템이 인간을 악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것도 그 개인의 책임으로 봐야 한다. 역사의 방관자, 동조자도 책임을 져야 한다. 개인 생존 우선의 선택이 결코 사회의 악으로부터 한 개개인 악을 면책시킬 수는 없다.

 

사람은 참 더디게 크는 동물이다. 부모와 사회의 보살핌이 10년 이상 필요한데다,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데 10, 20년이 더 걸린다. 나아가 부끄러움을 아는 진정한 인간이 되기까지, 우리는 많은 것을 더 준비해야 한다. 그 준비라는 것은 진실을 바라 볼 수 있는 용기, 스스로를 반성하는 태도 그리고 공감능력... 사회맹, 구조맹, 역사맹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감의 조건은 무엇인가? 왜 우리 인간은 특정 조건에서 공감하지 못하는가? 공감의 방향과 폭은 제한적인가? 무한한가? 악의 평범성으로부터 우리는 진정 자유로울 수 없는가?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