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이야기

챗GPT와 예술의 창의성

켓세라세라 2023. 2. 23.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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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그리트의 그림 속에는 파이프가 그려있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혀 있다. 분명 그림은 꽃이나 쥐가 아니라 파이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파이프가 아니다. 그것은 종이 위에 묻어 있는 물감이지 파이프가 아니다. 또는 컴퓨터 이미지 파일일 뿐이다.  즉, 그림은 사물이 아니다. 누구도 그것을 문제 삼지 않으므로 이 단순하면서도 어려운 사실을 마그리트는 아이러니하게 표현하고 있다. 마그리트의 작품은 자동화된 일상적 인식의 틀을 깨는 것이고, 낯설게 하여 우리에게 잊혀진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그림 속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혀있다

일 더하기 일은? 답은 2가 아니라 과로이다. 일은 숫자 1을 의미하기도 하고, 노동을 의미하는 일을 뜻하기도 하기 때문에 애매한 단어를 이용해서 아재개그를 시전할 수 있다. 또는 불완전한 문장 구사도 애매하게 해석되기도 한다. ‘친구 A와 친구 B의 여자친구를 만났다.’ 는 문장은 ‘친구A도 만났고 친구 B의 여자친구도 만났다’는 것인지 ‘친구 A의 여자친구와 B의 여자친구’를 만났는지 분명하지 않다.
애매와 유사한 단어의 모호성도 있다. 어머니의 ‘손 맛’이 그러한데, 그 맛의 범위가 분명하지 않다. 어머니의 체취가 들어간 음식 맛인지, 정서적인 모성을 의미하는 것인지 대충 대충 이해하고 쓰는 말들이다. 다양한 뜻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용하는 범위가 불확실하다. 또는 불확실한 의미를 하나의 의미로 퉁칠 때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나이든 음식점 주점의 여 사장님도 모두다 ‘이모’라고 통칭한 것도 그렇다. 왜 고모는 아닌가. 유머와 위트를 시전하는 인공지능, 아직까지는 글쎄다.

르네 마그리트 작 '인간의 아들'

신화의 애매함과 모호함은 그 무엇을 감추기 위한 것일까, 잘 드러내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그 둘 다일까. 그렇다. 일상적 언어는 자동적이며 습관화된 틀 속에 갇혀 있다. 그래서 과학과 기술은 애매모호함에서 벗어나려 한다. 반대로 문학과 예술은 애매모호함으로 우리의 사고를 이끌고, 우리의 일상적 삶과 사물이 본래의 의미를 상실한 채 퇴색함을 역으로 드러낸다.
이중사고, 양가감정과 같은 모순이 포함된, 또는 애매모호함으로 포장된 유머와 위트에 이르기 까지 아직까지 챗gpt의 수준은 높지 않다. 또는 이러한 일상의 사실에서 새로운 느낌을 표현하는 예술에 이르지는 못할 것이다. 본질적으로 예술은 현실의 관점에서 무모하고 어리석은 것이다. 그러한 무모함은 예술과 문학은 자동화된 일상적 인식의 틀을 깨는 것이고, 낯설게 하여 사물에게 본래의 모습을 찾아주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과거의 익숙한 틀에 맞춰 문제에 접근하기 보다는 좀 더 새롭고 넒은 시야를 통해 접근하는 것이다. 그러한 사고는 기존 잘 알고 있는 것을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뒤샹, 샘(Fountain)

인공지능과 로봇이 대체할 시장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유엔 정의에 따르면 공예 출판 인테리어 패션 영화 음악 미디어 분야를 창조서비스라고 한다. 이러한 창조 서비스 시장의 확장은 청년 실업이나 일자리 부족 같은 경제현안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도 같다.
영화 연극에서 연기를 로봇이 직접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연극대본이나 영화시나리오를 AI에게 전적으로 맡기거나 연출을 대신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애매 모호의 끝판왕은 뒤샹의 변기 작품 ‘샘’인데, 이러한 작품성, 예술성을 인공지능과 로봇이 구현하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은 그렇다는 것이고 앞으로 먼 미래에는 인간을 넘어서 예술성을 구현하는 인공지능이 나타날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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