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이야기

가면무도회,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관람 후기

켓세라세라 2022. 7. 20.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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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가면무도회’ 작품 전시를 한다. 2022.07.31.(일)까지 한다고 해서 얼른 다녀왔다. 무료이다. 주차비만 2000원 내면된다. 그리고 2층 까페 음식이 맛있다.

출처 : 뮤지엄 뉴스, https://museumnews.kr/308ex01/


다음은 주최측의 행사 소개 글이다.

«가면무도회»는 COVID-19 대유행으로 마스크 착용이 별안간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에 얼굴을 가리는 행위의 상징적 의미에 대한 현대미술작가들의 오랜 탐구 사례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생략.... 그리고 현대인의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가상세계 속 아바타나 롤플레잉 게임 등은 현대미술 동시대 작가들에게 가면의 의미와 해석에 대한 다양한 접근을 이끌어내고 있다.


전문 예술인 미술인이 아니더라도, 미술관에 가서 꼭 팜플렛 책자에 소개된 글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팜플렛에 적힌 설명글이 훨씬 자세하고 가면의 의미와 현대미술에 대해 숙고하게 해준다. 누가 이글을 썼는지는 밝혀야 하지 않을까? 미술관 관장님이 썼나? 하여간 좋은 글이다. 어쨌든 유럽 왕과 귀족들의 놀이였던 가면무도회와는 좀 다른 취지의 행사이기는 하다.


다음은 나의 감상 후기이다.

‘위선의 가면을 벗어라’ 뻔한 레토릭이지만, 예술이 현대인에게 주는 강렬한 교훈이다.

이데아의 발상법, 내각의 합이 180도인 삼각형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아주 정교한 자와 연필을 가지고 삼각형을 그려봐야, 항상 오차가 있는 삼각형 모양의 그림일 뿐이다. 진짜 삼각형은 현실에 없고, 우리 머릿속에만 존재한다. 삼각형 이미지가 주는 세상의 혼란, 플라톤은 이미 2500년 전에 예견했다.

플라톤


플라톤이 화가, 회화를 싫어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플라톤이 보기에 화가들이 그린 그림들은 실체(이데아)를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서 왜곡한다.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가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눈속임이고, 모방에 불과한 것이다. 마치 사슬에 묶여있는 인간들은 동굴 벽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들을 실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자들이 화가나 조각가들이다.

플라톤의 철학에 연장선상에 있던 데카르트도 감각경험을 통해 얻은 인식을 불신했다. 주관적이고 단편적이기 때문이다. 명석한 사고, 이성, 의심을 통해 진리를 인식하여야 한다고 보았다. 그냥 간명하게 외부 이미지만을 쫒아 다니는 삶은 왜곡된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고, 현실의 삶과 충돌하기 마련이다.

몸, 정신, 영혼은 이미지 세계에서 분명히 구분되지 않는다.


우리는 수많은 이미지의 속임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지 못한 채 감각적 경험만을 강요하는 현대문명으로 이행해 왔다. 플라톤은 불만 있겠지만, 어쩔 수 없다. 이 위선과 거짓을 판별하는 것은 오롯이 개인의 지적 역량에 달려있다. 뭐 플라톤 시대에는 안 그랬겠는가

그리고 마스크, 가면...인류가 얼굴과 몸에 치장을 시작한 이후에 그 문화적 사회적 의미만을 생각해 보면...

노벨문학상 소설 ‘파리대왕’에서 잭의 무리는 얼굴을 피와 재로 장식한다. 인류 보편 문화의 문법을 따르는 것이리라. 자신의 치장은 사실 거울이 없는 상태에서 같이 위장을 한 동료를 보면서 자신의 모습을 짐작할 뿐이다. 그래서 가면의 효과를 내는 문신이나 화장, 위장술은 사회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마스크는 동질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한다. 그리고 어떠한 잔인한 행동을 해도, 부끄러움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키는 행위이다.


가면은 뭔가를 숨긴다는 것인데, 마스크를 쓰는 자는 자신의 두려움, 공포, 약함, 거짓을 숨기고, 한편으로는 폭력, 기습, 습격을 가하겠다는 약속이다. 그리고 잠재적 적에게 공포와 긴장을 줄 수 있는 일석이조의 전술적인 행위이다. 잭은 이러한 행위를 주도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다시 강화한다. 일석 삼조다.


이미지를 소비하는 현대사회에서 NFT로의 진화.... 항상 시대를 앞서왔던 미술과 예술, 또다시 어떻게 시대를 진단하고 비판하며, 전망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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