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가야 역사, 5세기 기생반숙례 반란 사건 전반부

켓세라세라 2022. 6. 15.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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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리역사, 가야역사에서 5세기 말 487, 한반도 남부를 뒤흔드는 사건과 한바탕 활극이 펼쳐졌다. 해석에 따라서는 찻잔속의 태풍일 수도 있는 사소한 사건으로 보기도 하고 한국 사학자들은 역사가 아닌 조작 설화라고 일방적으로 보기도 한다.

 

관련 국가들은 당시에 한반도에 있었던 모든 국가들, 고구려,신라, 백제, 임나가라, 왜가 모두 등장한다.

 

주인공은 키노오이와수쿠네(紀生磐宿禰, 기생반숙례)이다. 가야계 왜인인지, 백제계왜인인지 마한계인지, 그냥 왜인인지 불명확하다. 는 발음이고, 뜻은 나무 씨이다. 숙례, 수쿠네는 카바네()이기 때문에 키오이” “키오이와로 생략해서 부른다. 백제에서 목씨는 마한계통 귀족 성씨라고도 한다.

 

일단 22년을 거슬러 올라가서 4653월 키오이와 아버지 기소궁숙녜는 야마토 왕의 명을 받아 소아한자, 대반담련, 소록화숙녜 장군들과 신라를 침략한다.

 

삼국사기 신라기록에는 자비마립간 6, 463년 왜인이 삽량성(歃良城) 지금 양산 지역에 침입하고, 자비 왕이 벌지(伐智) 덕지(德智)에게 명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길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다가 공격하여 그들을 크게 물리쳤다고 나온다.

 

기록상 2년 차이기는 하나, 일본서기 기록이 한 가문의 전승 기록을 통째로 짜 맞추어 옮겨 놨다는 점과 신라와 왜는 수없이 많은 전쟁을 해 왔기 때문에 기소궁숙녜와 싸운 신라 장군은 벌지 덕지 장군이 맞는 듯하다.

 

그런데 기소궁숙녜는 신라와의 전투에서 잘 싸우고 이겼으나 결국 패배했고 결국 병들어 죽었다. 이 과정에서 대반담련도 전사한다. 잘 싸웠으나 졌다라는 것을 후손들이 남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쨌든 기록은 구체적이다. 대담반련의 노비가 주인이 전사했음을 알고 용맹하게 싸우다가 전사했다는 것 까지 기록되어 있다.

 

이 승리 후 신라는 양산 지역에 성을 더 쌓아 왜와 가라의 침입을 대비한다.

 

 

그리고 465년 기소궁숙녜 아들 키오이는 아버지가 죽었음을 알고 소록화숙녜가 지휘하던 군대를 빼앗아 장악한다. 키오이는 소록화숙녜 군대 뿐만 아니라 소아한자의 군대 마저 뺏으려 획책을 하고, 이에 소아한자는 키오이를 죽이려다 거꾸로 자신이 키오이에게 살해당한다.

 

여기서 백제 개로왕이 등장하는데, 임나가라의 상황이 심상치 않은지, 세 명의 키오이, 소록화숙녜, 소아한자를 초청했는데, 결국 이들은 개로왕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하여간 삼국사기와 일본서기가 딱 들어맞는 내용은 없다. 삼국사기에 몇 년에 한번씩 띄엄띄엄 기록된 주로 왕과 관련된 기사들은, 정말 중요하기에 기록되었을 것이고, 이 기록 저 기록을 짜깁기하다시피한 일본서기의 기록은 신빙성이 좀 떨어지기는 하다.

 

그러나 일관되게 나타나는 반신라 관점, 임나가라에 대한 애착, 신라본기 박혁거세부터 줄기차게 신라를 침공 공략하는 왜인,왜병, 왜군.

 

우리가 생각하는 고대사는 생각보다 훨씬 더 다이나믹하고 구체적으로 생존 투쟁을 했던 시기인 것 같다. 예를 들어 현해탄을 넘어 일본 규슈와 부산이나 동래, 양산, 울산, 거제도, 김해를 왔다 갔다 하기가 지금 시점에서도 어려울 것 같은데, 사실 태풍이나 큰 비가 아니면 그 왕래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현대에 반도체와 같은 첨단 전략 물자 철, 쇠를 구하고 발전된 기술을 습득하기 바빴을 야마토 왜의 입장에서 가라는 고마운 수에나라, 쇠에나라 쇠나라이다. 실제 일본에서 이렇게 가라를 불렀다고 역사학자들은 본다. 그리고 야금야금 낙동강을 넘어 세력을 확장하는 신라가 미웠고, 땅을 빼앗긴 가야인들은 또 왜로 넘어가서 반신라 감정을 키웠을 것이다. 그리고 가야와 백제의 용병으로 이 땅에 들어왔을 것으로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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