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가야 역사, 5세기 기생반숙례 반란 사건 후반부

켓세라세라 2022. 6. 15.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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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의 영화 같다. 드라마틱하다. 기회만 되면 기본 스토리에 시나리오를 잘 짜면 神聖이라는 이름으로 영화한편 찍어도 되겠다.

 

이후 난리의 처리와 관련해서 임나의 나기타갑배 일족은 왜로 이주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 후손들이 안라가라를 위해 친신라편에서 반백제 외교활동을 한다. 이에 대하여 백제 성왕은 하내직(나기타갑배 후손)에게 나기타갑배는 간악하고 거짓을 행하였다고 비난한다. 즉 가라에서 백제의 영향력이 약화된 것을 이들 탓으로 돌리고 있다. 그리고 키오이는 이용당했고, 왜로 쫒겨난 것은 너희들 때문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서 임나가라가 결국 망한 것도 너희들 일족 때문이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또한 백제 성왕은 가락국이 친신라 정책을 펴는데, 왜의 사신 카아외치아타이, 하내직이 신라에 왕래하며, 신라관복을 받고 즐거워했다는 것에 극 분노를 표출하기도 한다.

 

한국의 고대사 연구자들은 한결같다. 신공왕후의 황당한 역사기록과 일본의 임나일본부설에 대한 반감으로 대체로 기생반숙례 반란 사건을 무시하거나 거짓 기사로 본다. 그러면서도 백제 위주의 관점으로 역사를 서술한 일본 서기의 결론은 받아들인다. 가야에 주둔한 왜군은 백제군이라는 식이다. 목만치와 키노오이와는 동일인물이라는 설도 그렇다.

 

이해는 한다.

 

한반도 남부에 야마토 왜가 일정 세력을 가지고, 권력을 부리는 일을 우리는 인정하기 정말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생각을 바꿔, 그 많은 한반도 인들이 규슈와 일본 본주로 이주했음을 생각해 보면, 다시 그들이 한반도로 와서 무역을 하던 전쟁을 하던 결혼을 하던, 생각보다 많은 교류가 있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부산 태종대에서 맑은 날 저 넘어 바다를 보면, 대마도가 보인다. 보이는 섬에 배타고 못갈 이유가 어디 있는가, 또 대마도를 가면 그 만큼 항해하면 규슈에 도착하는데

 

예를 들어 백제가 마한을 멸망했을 때도, 고구려가 낙랑과 대방을 멸망시켰을 때도 배타고 열도로 넘어갔을 것이고, 광개토대왕이 지금의 임나가라를 휩쓸 때도 또 도망갔을 것이고, 한성백제가 망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본거지를 잃은 이들 또한 바다 건너 갔을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선진 문물과 기술을 가지고 갔을 터, 더구나 일본 열도는 농사짓기가 아주 좋다고 소문까지 무성하면...정치 군사적 혼란 시기에 갈 수 있는 땅에 왜 안가겠는가?

 

 

하여간 전기 금관가야 중심의 임나가야가 힘을 잃고, 이리저리 분립하던 가야 소국들 중 고령가야와 아라가야가 정치 세력화를 도모하는 과정에서 키오이의 반란, 독립국 선언 사건은 발생했을 것이다.

 

결국 그 과정에서 백제의 동진, 신라의 서진에 의해 가야는 멸망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임나가라 부흥회의가 구체적으로 성왕 주도로 열린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삼국사기 신라본기 초기부터  신라를 괴롭히던 수없이 등장하는 왜병, 왜인의 실체는 무엇일까. 야마토 왜는 왜 그렇게 임나 부흥에 집착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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