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가야 역사, 5세기 기생반숙례 반란 사건 중반부

켓세라세라 2022. 6. 15.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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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왕 아버지 광개토대왕때 이미 신라를 위협하던 왜병은 고구려 군에게 크게 패해서 쫒겨난 바 있다. 그런데 신라가 오히려 반고구려정책을 피면서, 야마토 왜는 친신라, 반신라를 오락가락한다. 가야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광개토대왕의 한반도 남부 원정 이후 또 다시 정치 군사적 큰 사건이 벌어지는데

 

장수왕 63(475) 장수왕이 군대 30,000명을 거느리고 백제를 침공하여, 위례성을 함락하고 개로왕을 죽이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로써 한성 백제는 망하고, 백제는 웅진으로 천도하면서 극심한 정치적 혼란에 빠진다. 문주왕, 삼근왕, 동성왕 모두 암살 당한 것으로 본다.

 

이 와중에 키오이는 계속해서 임나가라에 주둔하면서 간헐적으로 신라를 공격했던 것 같다. 신라 소지마립간 44825, 소지마립간 84864월 두 번 왜인이 변경에 침입했다고 삼국사기는 기록한다.

 

474년 일본서기에 목만치 아버지 목라근자의 공로를 배경으로 가야의 국정을 마음대로 했다는 기사가 있다. 목만치는 백제의 관료 장군이다. 어느 정도 가야가 백제의 영향하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목만치가 키오이라는 설도 있는데, 시기적으로 좀 안 맞고, 오히려 목만치가 일본의 유력 정치인 소아만치라고 보는게 더 타당하다)

 

장수왕 66(478) 삼국사기 기록에 백제의 연신(燕信)이 고구려로 투항했다. 연신은 백제 8대 대성 씨족으로, 정치적으로 백제는 무척 혼란했음을 알 수 있다.

 

 

479년 가라 국왕 하지는 한반도에서는 유일하게 중국 남제와 통교하여 국왕 하지가 보국장 군본국왕작호를 제수 받았다. 정치적으로 대가야라 불리는 정치세력이 활발히 외교 정치 활동을 했음을 알 수 있다.

 

481년 고구려가 신라를 침공했을 때 백제와 더불어 신라에 구원병을 파견한다. 이 때만 해도 고구려에 대항해 백제, 신라, 가라가 협력하고 있다.

 

드디어 487, 반란인지? 독립국 선포인지? 하여간 키오이와는 임나를 점거한다. 그리고 백제가 약해진 틈을 타서 고구려와 교통한다. 뭔가 정치적으로 고구려와 거래가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삼한의 왕임을 당당히 선포하고 스스로 신성 神聖이라고 칭한다.

 

그리고 핵심 참모 임나의 나키타갑배의 계책으로 백제 관료 적막이해를 살해하고 대산성을 쌓는다. 대산성은 임나지역에 주둔하던 백제군의 식량 운송을 막는 위치에 있다. 반 백제 깃발을 든 것이다.

 

이 당시 동성왕은 웅진에서 나름 국력을 회복하고, 고구려에 복수의 칼을 갈고 있을 때였다. 동성왕은 크게 화를 내면서 핵심 정예 병력을 빼 대산성을 공격하게 한다.

 

그리고 키오이는 자신의 아버지처럼, 정말 용맹하게 잘 싸웠는데... 결국

 

졌다.??

 

아버지와 똑 같다.

그리고 키오이는 임나를 거쳐 일본으로 도망친다. 백제는 나기타갑배 등 임나인 300명을 죽여 백제에 대한 반란으로 여겨진 사건을 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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