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통합사회

통합사회, 행복한 삶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 정주환경6

켓세라세라 2024. 5. 19.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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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통사1-02-02] 행복한 삶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으로 질 높은 정주 환경의 조성, 경제적 안정, 민주주의 발전 및 도덕적 실천의 필요성에 관해 탐구한다.

질 높은 정주 환경의 조성의 주체는 누구인가. 도시와 농어촌의 삶,  정주환경의 미래는 어떠할 까. 정책의 실현으로 기대하는 바람직한, 행복한 삶을 실현하는 조건으로 질 높은 정주 환경을 어떻게 조성할 것인가.

근 미래, 다가올 20~30년 동안의 변화에 미칠 요인으로 가장 중요한 경제적인 조건이 크게 좌우하겠지만, 예상되면서 조금씩 체감하는 장기 지속적인 변화요인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먼저 인구 감소와 노령인구의 증가이다. 그리고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 한반도의 국제 정치 외교 변화와 맞물린, 북한 붕괴 및 통일, 인공지능 AI 기술 혁명과 일자리 위기 등이 변화를 추동하는 힘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포천의 한 농원. 숙소로 쓰는 비닐하우스 농막에서 지난 2020년 12월 캄보디아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

"4  년 전 취업비자를 받고 입국해 농원에서 일해오던  30 살  A  씨. 이주단체는 한파로 인한 동사 가능성을 제기한다.  - <2020 년  12 월  23 일  SBS 8 시뉴스 >

 지방 소도시, 군 단위 지역에 가보면 쇠락의 기운을 여실히 느끼기도 하지만, 젊은 외국인 노동자들, 그리고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여러 상점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다문화사회라고 단정 짓기도 어렵고, 이민정책의 변화를 예고하는 단계에 있지만, 한국은 이제 다양한 인종, 종교,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는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많은 사회학자 내지 교과서에서는 쉽게 이질 적인 사람들과 더불어 잘 사는, 행복한 사회를 위해서 다문화주의를 받아들이라고 한다. 또는 이질적인 언어, 문화, 종교를 가진 구성원들이 공존할 경우 가치관의 갈등이 생겨나고 문화적 차이를 인정받기 위한 경쟁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에 주류 사회는 새로 유입된 문화를 위협으로 인식하고 동화대상으로 간주해 버리는 다문화주의는 이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기존 사회를 유연하게 만드는 계기로 보아야 하는 것인가. 외부 종의 침입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이 인식의 차이가 낳은 현재 유럽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혼란을 우리는 바라보고 있다. 이 불일치를 어떤 식으로 해결해야 하는가.

모든 이주 노동자의 정주환경이 비닐하우스 움막, 불법 가건물, 컨네이너 기숙사로 이루어졌을 리는 없을 것이다. 일부 비양심적인 사업주의 문제라 할지라도, 보편적인 주거 기본권을 최소한 보장하려는 노력, 외국인 노동자의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정부의 감시와 감독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국가적인 위신, 품격의 문제이기도 하고, 인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의 고통- 물론 약자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은 사회 전반의 행복도를 낮추게 한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이민자들과 어떻게든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이민자로부터 존중받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2022 년  3 월 ,  파주시 한 식품공장 컨테이너 기숙사 화재로 인도인 이주노동자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 <출처 : SBS>

이주, 이민 노동자들의 객관적 정주환경 개선에는 돈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사업자, 고용주의 돈도 필요하지만, 그들에게 기본적으로 제공해야 할 의료, 교통, 교육 서비스, 체육 문화 시설, 범죄와 화재의 예방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이 들어간다.

돈도 돈이지만, 자신들의 고통에 동의하지 않는, 다른 이의 얼굴에서 그들을 향한 차가운 시선이야 말로 서로를 힘들게 하는, 고용인이든 피고용인이든, 사회로부터 방치되어 있다는 생각이야말로 거칠고 불편한 주관적 정주환경을 만들어 내는 조건이 된다. 행복한 삶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으로 질 높은 정주환경은 저 멀리 가버리게 한다.

이러한 노력에는 돈을 들여봐야 효과도 별로 없기도 하지만, 돈 안들이고도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도덕적 실천그것 까지는 잘 모르겠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면, 또 몰라서 그렇다면 다 문화, 다인종으로 이루어진 사람들 간에 공존할 수 있는 연습, 학습, 교육은 더더욱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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