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선량하고 성실한 채무자의 멘탈

켓세라세라 2023. 7. 5.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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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탕감, 부채조정의 조건이 무르익어 간다. 사회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경제가 붕괴되기 직전이거나, 전쟁이 나면 빚은 깎아줄 수밖에 없다. 370년 전 하멜이 기록한 조선 사회, 빚에 대해 굉장히 엄격했다. 빚지면, 관에 가서 곤장을 쳐 맞거나, 그 친인척이 결국 빚을 갚거나 노비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와 반대로 신라 국가소멸의 위기에서 당나라 군대와 맞서 싸운 문무왕은 죄수를 사면하고, 백성들의 빚을 대거 탕감해 준다. 이를 바탕으로 지금 연천지역에서 이근행의 당나라 기병을 물리치면서 전쟁에 승기를 잡는다.
눈 먼 돈을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군림한 자의 표본들이 부쩍 늘어났다고 느낀 것은 4~5년 전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여기 저기 카르텔 딱지를 붙이고 다니는 게 최근의 유행이기는 하다. 보조금 확보 전쟁이었고, 이제 보조금 축소 전쟁 중이다. 또는 자고나면 늘어나 있고 자고나면 독촉에 시달리는 원금과 이자, 도시의 모퉁이,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에 떨고 있는 채무자들에게 과연 자비는 없는가.

전셋값이 기존 전세보증금을 밑도는 역전세에 놓인 가구가 120만 가구라는 통계, 정부는 임대인에게 대출을 더 해 주는 정책을 발표한다. 원리금 이자 갚느라 최소생계가 어려운 이들이 299만명이다. 이 중 아예 소득보다 원리금 상환액이 더 많아 소비 여력이 완전히 없는 채무자만 175만명이다. 대한민국 경제활동인구가 2천7백만명 이니까. 이들이 먹여 살려야 할 가족까지 생각하면, 라면값 하락이 반가운 이들, 극한 상황에 놓이지 않았지만, 근근이 원금 이자 갚아나가며 생활하는 이들까지 생각하면, 후쿠시마 오염수와 아스파탐 음료수와 막걸리는 벌컥벌컥 마셔도 큰 문제가 안 될 것처럼 보인다.
이른바 한국판 서브프라임 위기이다. 시작은 ‘빚내서 집 사라’라는 경기부양, 건설경기 부양 정책으로 일관된 통화팽창, 재정확장 정책의 연속이었고, 거의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부실한 노후대책, 복지는 베이비부머를 더 부동산 집착으로 내 몰았고, 이에 그 자식들도 같이 영끌과 빚투로 호응했다. 자신이 채무자임에도 채권자로 오인하기 좋은 전세제도도 여기에 기여했다. 빚으로 부양하고자 한 내수 소비는 코로나 팬데믹에 가려졌지만, 결국 빚은 빚일 뿐이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코로나 팬데믹위기 조차도 이 열기를 꺾지 못했다. 일본 도쿄 집값 보다 2~3배 높은 현상을 지적해 봐야, 별로들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국판 서브프라임, 정치권이 선심 쓰듯이 쉽게 많이 대출해준 전세자금대출은 버블의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잃어버린 30년 일본 버블처럼 찬란하지는 않았지만, 못지않게 한국은 독일차들이 거리를 누비고, 한국인의 해외여행으로 소비한 달러는 3억 4천만 달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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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정권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은 낮은 금리, 쉽고 빠르며 많은 대출로 베이비부머와 청년 세대를 영끌과 빚투로이끄신 분이다. 우리는 이 버블을 피할 수 없었을까. 정말 버블이 불가피했을 까. 버블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이차저차 우리는 먹고 살았다. 그러면 된 거 아닌가, 원래 자본주의가 그런거 아닌가. ‘비겁한 변명입니다’!?... 그런데 버블이 꺼지면서 그 고통은 고스란히 채무자들의 몫이 되었다. 또는 전 국민이 골고루 그 부담을 다시 지게 되었다. 주택 가격이 영원히 오를 수 없다는 것, 제로금리에 근접하는 초저금리가 계속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잊거나 무시한 후과이다. 코인? 말해서 뭘하랴.
결국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금리가 인상하면서 하나의 패러다임은 쉬프트, 체인지 되었다. 게임의 룰이 바뀌는 때이다. 그러고 보면, 잃어버린 일본 운운하고 낮은 엔화가격을 좋아하기에, 중국과 외교 감정 싸움을 하기에, 북한의 식량난을 이야기하기에 우리가 처한 긴축과 내수축소의 고통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1.4% 경제 성장률, 잠재 경제 성장률을 아주 밑돈다. 저출산, 저출생 문제, 지방소멸 문제는 이모든 경제상황의 결과일 뿐이다. 뭘 해도 해결 안 된다.

어두운 뉴스들에 마음이 불편하다. 항상 사회적 약자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피해를 입는다. ‘동물학대’ 부터 ‘미신고 영아’ 살해사건, 노인학대, 가족 집단 자살 사건 엽기적인 사건들이 앞으로 계속 쭉 더 많이 발생할 것이다. 층간 소음 갈등과 보복운전 폭력은 약과로 인식될 것이다. 자살률, 전고점을 돌파할 것이다.
경제적인 관점의 우파 보수나 사회복지 관점의 좌파 진보가 유일하게 합의 동의하는 사회경제 정책이 빚탕감, 부채축소 정책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 인플레이션으로 한번 털리고, 리바이어던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최소경비를 부담하게 하는 세금 부담으로 두 번째 털린다. 세 번째 선량한 집주인, 성실한 채무자들은 이제 빚탕감으로 상실감에 멘탈이 털릴 것이다. 빚 갚으려 알뜰히 돈 모으고, 대출 원금이자 꼬박꼬박 갚은 사람의 마음은 스산하다. 모 정치인이 주장한 헝가리식 대출 탕감 정책, 저출산 대책으로 출산시 전세대출이나 주택구입자금 대출의 원금을 탕감하자는 주장도 황망하지만 않다. 그나저나 이제 ‘선량한’, ‘성실한’ 이란 수식어는 붙이지 말자. ‘열받는’ 이 정확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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