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킬러 문항, 킬러 시스템

켓세라세라 2023. 6. 20.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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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이런 식이다. 이번에도 당했다. 역시 성동격서의 달인들이다. 어찌 보면 사소한, 중요하지 않는 이슈를 뻥 터뜨리고, 진짜로 중요한 문제를 감춘다. 그리고 자신의 입맛대로 정책을 이끌어 간다. 대통령이 나서니, 교육부 대입국장이 경질되고, 수능평가원장이 사임한다.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큰 명분을 앞세우고, 더 큰 킬러 제도인 자율형사립고, 외국어고, 국제고를 존치하기로 했다. 아 결국 이거였구나, 온갖 스피커들이 떠들어 대어 소용돌이나 회오리 바람을 일으켜 선수 감독 심판 응원단, 관객들의 눈을 돌린 다음, 게임 규칙을 자기 입맛대로 싹 바꿔 버리는 기법, 대단한 정치 스킬이다.

5~6년 전, 유명 유튜버 영국남자에서 영국인을 대상으로 한국 학생들이 보는 영어 수능 문제를 풀게 해서 답을 맞춘 적이 있었다. 예상대로 영어 원어민조차 풀지 못하는 문제들이 3분의 1은 되었다. 원어민 조차 독해 하기 어려운 학문 영어, 그리스어 라틴어가 바탕이 된 영어, 우리식으로 따지면 한문이 빼곡이 있는 고문을 읽고 해석하라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이런 수능 영어가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국제적인 헤프닝은 사라지게 되었고, 학생들의 영어 과목에 대한 부담은 상대적으로 많이 약화되었다. 영어 과목이 그렇게 되니 수학과 국어에서 킬러문항은 변별을 위해 더 심해졌던 측면이 있다. 교육적으로든 사회 공정을 위해서든 킬러문항은 없는 게 좋기는 하다만, 숲 속에 호랑이가 사라지면 늑대나 여우가 득세를 할 것 아니겠는가. 또는 그 숲속의 경쟁은 극 소수 생태계 내 경쟁이지, 들판과 강과 바다의 경쟁은 아니잖는가.

학벌 서열구조가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에서 눈 가리고 아웅 격인 정책이다. 변별이 어려워 지면 대학교는 정시에서 심층면접이나 논술을 부활시킬 것이 뻔한데, 이것은 또 어찌 막을 것인가. 이미 유수한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합격생들은 최초 합격자 중 50%이상이 등록하지 않는다. 의대에 복수로 합격했기 때문에 의대를 선택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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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같이 사는 이웃들을 경쟁자, 잠재적 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심리적 요인은 알다시피 교육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부동산 문제와 교육문제는 한국인들의 욕망을 반영하며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대체로 미친 사람들, 강박증 환자들을 양산하는 주범이다. 그 욕망의 피라미의 꼭대기에는 의대가 있고 치대가 있고, 한약수가 있다. 그리고 그 경쟁의 중간성과와 성취의 기준은 자율형사립고, 외국어고, 국제고, 영재고 진학에 있다.

자신의 아이를 특별하게, 우수한 엘리트로 키우려는 이 욕망은 원초적이면서도 에너지가 강렬하다. 어느 정도는 보편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욕망의 쏠림현상은 완화시켜야 한다. 나눌 파이가 별로 없는 상황에서 병적인 경쟁심리는 사람들 눈을 멀게 하고 조급하게 한다. 어찌 숲속에서만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겠는가, 강가와 들판, 바닷가에서도 잘 먹고 살 수 있도록 욕망을 이리 저리 터 줘야 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또는 척박한 강가와 들판에 살지만 풍요한 숲속에 진입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피라냐, 킬러이다.

 극상위권을 지향하는 상위계층, 중상층,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경기 종목인데, 자신의 운동장과 체육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뭔지 잘 모르게 만들거나, 또는 자신이 선수인데 감독을 하려하거나, 심판을 하려한다. 또는 심판인데 선수로 뛰는 일들이 발생한다. 아예 경기장을 잘못 찾아 왔거나, 자신의 이익은 잊어 버리고 남 걱정하는 코미디 같은 일들이 발생한다.

계층별, 지역별 학부모와 학생들, 수능체제 수능권력자들, 교육당국, 대학교 입시당국, 고등학교 선생님들, EBS, 사교육 업체와 그 종사자들, 온갖 사립학교, 각각의 이익이 누구인지 분명히 하면서 실력과 노력에 의한 학습과 공부, 시험과 평가는 어떠해야 하는지, 더 나아가서 공정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선수가 심판 행세를 하거나, 심판이 선수 행세가 하는 것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도록, 경기 관객들의 눈을 가리는 비겁한 짓은 하지 말자.

킬러? 킬러가 중요하긴 한데, 그 목표를 오인한 킬러들이 항상 문제다. 자기가 킬러인데도 킬러인줄 모르는 것도 문제고, 킬러가 분명한데도 심판으로 고용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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