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중진국의 함정, 경로의존성에 빠진 대한민국

켓세라세라 2022. 8. 2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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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재미없다. 생각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밋밋하다. 비정한 현실과 유리된 아이들의 동화이다. 그나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내부총질과 양두구육의 두 쌍을 이루는 인생의 슬프고 웃긴 블루스 춤과 같아서 재미있었나 보다.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같은 말들을 계속 반복하는 것은 이미 사상과 신념이 구체적인 현실과 괴리되고 있다는 증거인가. 자유와 인권을 내건 정부의 등장은 자유가 정말 소중해서가 아니라, 평등을 대체하는 공정이 대세인 시대에 그나마 구라를 칠만한 게 없어서인 것 같기도 하다.


테제에 대한 안티테제, 정반합의 변증법은 디테일을 무시하기 때문에 상당히 거친 인식틀이다. 산업화와 민주화, 그 양대 산맥을 넘는 과정에서 오솔길과 길가에 핀 들꽃, 다양한 수목 생태계들은 무시되고 넘어 왔다. 큰 정치, 거대담론의 시대에서 이제 우리는 지나온 시대의 지평을 돌이켜 보며, 반대의, 반대에 의한, 반대를 위한 정치 공학만이 남게 된 상황을 씁쓸하게 바라본다. 반대를 위해서라면 살인마의 인권을 살뜰히 걱정해주는 디테일의 등장은 당혹스럽다. 그 무엇을 찬성하든지, 반대하든지, 그 놈이 그 놈임을 알게 된 것은 정치의 비극이다.

담대한 구상, 처음부터 담대하지도 않았고, 뻔한 말의 상찬임을 눈치 챈 거는 영리한 북한 핵심 권력자들만이 아니다. 6.15 공동선언으로 시작된 2000년대는 두 번의 남북한 정상회담, 그리고 김정은과 문재인대통령, 트럼프 까지 판문점에서 만나서 한바탕 쇼로 끝났다. 그리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종전? 정전? 비핵화? 꽉 짜인 냉전구조, 미중러일의 답답한 지정학,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무엇을 하지 말았어야 할까.

구조에 갇혀 있다고 생각되는 게 한반도 통일외교 문제 만이겠는가. 집값만은 잡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도 별 소용과 효과가 없었던 이유는 코로나라는 위기에 먹고사니즘이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어느 정도 계속 유지 시켰던 저금리와 그리고 손쉬운 대출을 통한 경기부양은 소득주도성장이 아니라 부채주도 성장 정책이었다는 것은 경제에 조금만한 견식이 있는 사람들이면 다 안다. 많은 국민들이 원하는 전세자금 대출과 신용대출을 대폭 용이하게 손쉽게 늘려주면서 집값을 잡겠다고 한 건 아이러니가 아니라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 와중에 집값은 드라마틱하게 MZ세대의 영끌을 방조 조장하면서 폭등했고, 코인은 화폐라고 우기다가, 교환가치가 없다는 게 알려 지면서 자산이라고 우기면서 버블을 완성했다. 한국인의 과소비가 우려스럽다는 외신 뉴스는 그냥 스쳐지나갔다. 이제 그 후과만 남았다.

미중 갈등의 와중에 칩4 동맹의 참여와 중국의 한국 견제가 뻔히 예상되는 상황, 경제활동인구의 감소, 대출 원리금과 이자 상환, 인플레이션으로 소비가 늘지 않는 가계, 소득양극화가 극심한 상황에서 저성장은 예견된바, 이에 대한 정책 대응은 뻔히 다시 토목과 건설이다. GTX ABCDF 노선 조기 착공과 완공, 아파트 270만호 건설로 땜빵할 게 뻔하다. GDP와 일자리 늘리는데 이보다 효과적인 정책이 어디 있는가. 이 정책의 후과는 5년 대통령 단임제의 다음 정권에서 알아서 해야 하는 비극으로 ‘내 알 바 아니다’


마른 수건 쥐어짜듯이 서울경기인천 중심의 초울트라메가시티 완성으로 지역소멸, 지방은 다시 한번 소외되고 쇠락할 것이고, 그 비효율적인 관리 비용으로 국민 세금은 계속 지출 될 것이다. 인구 4만 지방 소도시 공무원이 600명이다. 시청 군청 중심의 지역경제....전체 국민들이 부담해야 지 어쩌겠는가. 이대로 쭉 간다.

언론, 미디어, 교육, 복지, 문화 분야의 정책도 이제는 뭐하나 바꾸기가 어렵다. 지난 대선에서 고작 한국식 나이를 없애겠다는 공약은 신선한 게 아니라, 이 마저도 하기 어려울 텐데라는 생각이 앞섰던 게 사실이다. 아닌게 아니라, 추진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있지만 학제개편은 한번 우리가 시도해볼만한, 논의해볼만한 사안 아니었던가. 미래 비젼 제시 없는 정치에 대한 등돌림은 민심인 법, 낮은 대통령지지율과 야당 전당대회 낮은 권리당원 투표율은 쌤쌤이다.


사람은 나이 들수록 몸이 경직되어간다. 생각도 그렇다. 죽으면 모든 게 경직된다. 더 무서운 것은 사전경직, 생전경직이다. 유연하고 부드러운 대응이 불가능한, 변화와 개혁의 여지가 없는 꼿꼿한 시스템은 한꺼번에 우리 삶을 무너트린다. 중진국의 함정, 중국을 우리가 걱정할 때가 아니다. 경로의존성, 법적 시스템과 관행 관습에 의해 대한민국은 기부스를 하고 이동보조수단에 의지해 비틀비틀 쩔둑쩔둑 갈짓자로 걸어가고 있다. 180석 국회 의석으로도 눈에 보이는 개혁은 애초에 기대해서는 안 되었나보다. 타투 문신 합법화 시위를 하는 진보정당 국회의원을 보는 정도로 만족해야 하나보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과 권력 핵심층을 이루는 검사들...나쁜 놈들, 범죄자를 때려잡는 게 본업인 그들이, 범죄와의 전쟁이라도 벌려 시원한 활극이라도 보여주면, 그나마 답답한 현실의 탈출구가 될 것인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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