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정신

586 설거지론, 용퇴론

켓세라세라 2023. 8. 16.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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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하려고 하면, 대체로 하지말라.’ 칼 포퍼에 의하면 그렇다. 또는 "천국 건설 시도는 결국 지옥을 만들 뿐"이다. “추상적 선의 실현보다 구체적 악의 제거를 위해 노력하라”고 한다. 즉 과도한 이상주의는 마약과 같다. 위대한 철학자 사상가들, ‘거인의 어깨’란 없다. 플라톤이나 헤겔, 마르크스, 거대한 이상주의 체계를 세운 거인들이다. 엿 먹어라 정도는 아니지만, 뭐 그리 대단하냐고, 칼 포퍼는 주장한다.
이데아의 세계는 이상의 세계이다. 어차피 내각의 합이 180도인 삼각형은 머릿속에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에 아무리 정교한 자나 각도기를 가지고 재봐야, 대충 180도인 것인 것이다. 아니면 그냥 180도라고 대충 얼버무리거나. 그러니까 머릿속의 어떤 본, 유형, 생각을 현실에서 그대로 재현 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이다. 머릿속에 썩어빠진 아테네를 뒤로 하고 스파르타를 이상 국가로 생각한 플라톤, 혹은 소크라테스. 지나고 보면 아테네나 스파르타나, 역사의 흐름에 있는 그냥 지류에 불과하다.
그래도 옳은 것, 바른 것, 좋은 것을 추구하는 개인의 노력이 헛되거나, 헛발질로 끝나지 않는 것이 세상사인데, 어쨌든 칼 포퍼에게는 이러 노력은 정치적 귀족이나 지적 귀족들의 놀이에 불과하다. 또는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동일시하고, 이타주의는 집단주의와 동일시’하는 일반 대중들의 착각에 불과하다.

때 아닌, 아니 때가 되었으니 등장한 ‘586 설거지’론, 586 용퇴론은 어차피 한국정치나 사회에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이나, 이들, 1987 6월 항쟁의 주역이었던 이들이 ‘우리가 만든 쓰레기는 우리가 치우자’, “민주화운동의 상징 자산을 주사파가 사취하여 독점 이용하는 이런 어이없는 사태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현실 정치판에서 소외된 이들의 우회전 고백을 다시 듣는 것은 고역이기는 하다.
물론 자기 자신을 넘어선 공동의 이익이나, 헌신할 수 있고, 희생해도 좋을 목적을 지향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다만, 그런 좋은 일을 시도하는 자들이 ‘합리적인 이성’을 가지고 자신의 내면의 ‘불합리’한 감정들이나 수준 낮은 충동들도 극복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선행내지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성인군자가 아닐 바에야, 타인의 자유, 선택과 결정을 내릴 자유를 대신해서 내리는 것은 오만이다. 또는 모두가 성인군자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타인의 판단을 대신해 주고 결정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누군가는 더 현명하고 도덕적이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전제인데, 칵테일 좌파들 혹은 엘리트 우파들의 도덕성은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것이 현실인식이다.
잘 모르겠다. GDP 3만 2천 달러의 국가에서 이렇게 개판인 사회가 된 연유를. 10여년 전쯤 일베의 등장은 하나의 조짐이었다는 것만 어슴프레 짐작할 따름이다. 보수 부모세대의 적자생존 및 약육강식의 논리를 내면화하면서 물질만능주의 권위주의 성향의 남초들의 등장. 이러한 일상적이며 습관적인 악의 실현 조차도, 사회구조적인 요인으로 치부하면서 강한 매질과 경계에 실패하거나 등한시한 또는 다 같이 중상류층을 향한 욕망의 레이스에 편승한 좌파 진보 지식인, 정치인들이 운동권들의 태만이 지금의 한국 사회를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모든 것을 경제적인 프레임으로만 설명하는 것도 이제 지겹다. 불황과 인플레이션, 경기침체와 실업, 묻지마 살인과 선생님들에 대한 갑질 민원등과 같은 사회문제가 이 모든 어려운 경제 지표 때문이라면, GDP가 훨씬 낮았던 경제 개발 초기의 한국이 더 팍팍한 사회 생활상을 보였어야 하지 않겠는가. 가난과 빈곤, 불평등도 문제이고 공정과 정의란 것도 문제이기는 하지만, 불가피한 것은 불가피한데로, 상대적인 비교에 의한 경제적인 박탈감과 상실감을 만회할, 그 무엇이 우리들에게는 빠지거나 부족한 것이 아닌가.
‘산자여 따르라’며 앞서서 나간이들, 생각보다 민주화라는 한 시대의 소임을 다했고, 또 그 영광을 누린 것도 맞다. 보상을 받은 이들도 있고, 없는 이들도 있고, 어쨌든 그 소임이 끝난 이후 중상류층을 위한 경쟁에 보수 진보 할 것 없이 나섰고, 결국 필사적 생존 몸부림에 불과했다는 것으로 비웃음을 받더라도, 더 도덕적이고, 합리적이며, 현명한 리더와 엘리트들이 될 수만 있다면, 대체로 ‘무엇을 할려고 할 때’ 가급적이면 실력 이상으로 오버 하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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