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큰나라 백제와 일 후왕, 그리고 한일관계

켓세라세라 2023. 3. 1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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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는 우리말로 섬이다. 현대일본어에서는 시마()이다. 이 사마왕이 무령왕, 그리고 왜왕 무일까. 역사학계 소진철 교수는 그렇다고 본다. 478년 왜왕 무()는 송나라 순제에게 상표문을 보낸다.

상표문 요지는 다음과 같다. 백제는 지금 고구려 때문에 괴롭다. 백제와 송나라를 왔다 갔다 하는데 방해가 되는 세력이 고구려다. 그 고구려 침략에 결연히 싸우고자 했더니, 갑자기 아버지와 형이 죽게 되어 상 중에 있게 되었다. 이제 때가 되어 적을 무찌르고자 하니 도와 달라. 뭐 이런 내용이다.

무령왕이 461년 생이니까. 18세 청년의 나이이다. 왜왕 무가 무녕왕이 맞다면 그렇다. 475년 위례성의 함락, 아버지와 형의 충격적인 죽음, 혈기가 넘치는 나이에 그 어쩌지 못함을 분하게 생각하면서 상복을 입고 복수를 숙고했을 것이다.

무령왕릉 내부, 출처 : 공주시 홈페이지 https://www.gongju.go.kr/tour

그 당시 백제는 야마토 왜에 후왕을 파견하는 종주국이었고, 왜 정권은 백제의 왕을 섬기는 제후국이었다는 말이다. 왜왕으로 파견가서 일정 정도 정관계에 인맥을 맺고, 또 실력을 쌓아서 있다가, 구다라 즉 큰나라 백제왕이 죽으면 본국으로 귀국해 백제 대왕으로 등극했다는 말이다. 또다른 역사적 증거, 근초고왕이 일왕에게 보낸 칠지도에 쓰여진 供供侯王” ‘마땅히 후왕에게 줄만하다는 뜻이다. 또 다른 증거? 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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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와카야마(和歌山)현 하시모토(橋本)시에 스다하치만(隅田八幡) 신사에 구리로 만든 거울이 발견되는데, 일본 국보2호이다. 이 거울에 인물화상이 있고 뒷면에 글자가 써져 있다. 癸未年八月日十大王年男弟王在意柴沙加宮時斯麻念長寿遣開中費直穢人今州利二人等取白上同二百旱作此竟 ‘503810일 대왕년에 남제왕이 의자사가궁에 있을 때 사마가 장수를 염원하며 개중비직과 예인 금주리 등 두 사람을 보내어 최고급 구리쇠 200한으로 이 거울을 만들다여기서 사마가 바로 무령왕이다. 남제왕은 남자 동생왕, 일왕으로 등극하던 계체왕, 후왕이다.

왼쪽 인물화상경 원본, 오른쪽 전시용 모조품, 출처 : https://skyedaily.com/news/news_view.html?ID=115899

20011223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68세 생일을 맞아 나 자신으로서는 간무 천황(50대 천황·737806·재위 781806)의 생모(生母)(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기록돼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끼고 있습니다.”<日王 간무천황 생모가 무령왕 후손”, 동아일보 2015. 6.25> 라고 발언을 한다. 천황가가 백제 왕실과 가까웠다는 것은 역사학자가 아니더라도 다들 눈치채고 있어서인지,이 발언에 대해 한국과 일본 모두 반응은 그저 그랬다. 한국이야 식민통치에 대한 감정이 않좋은 가운데, 한일 공동월드컵을 개최하면서 떨떨음한 기운 가운데, 그래도 우리가 예전에 일본에 많은 문화 전파를 했었지라며 위안 삼았다면, 일본 우익 세력은 바짝 긴장하거나 생까거나 그랬다.

역사란 시대와 시대간의 소통, 과거와 현재 간에 끊임없는 대화에 의해 성립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역사는 시대를 반영할 수밖에 없고, 미래에 대한 가치지향을 포함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아키히토 천황의 다음 발언은 주목받지 못했다.

출처 :&nbsp;https://zh.wikipedia.org/

"일본과 한국인들 사이에는 옛날부터 깊은 교류가 있었다는 것은 일본서기(日本書紀) 등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중략....이러한 문화나 기술이 일본인의 열의와 한국 사람들의 우호적인 태도로 일본에 전해진 것은 행복한 일이었다. 일본의 그 후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한국과의 교류에는 이런 교류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것을 우리들은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양국민의 교류가 늘어나고 있지만 이것이 좋은 방향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양 국민들이 자신들의 국가가 걸어온 길을, 각각의 사건에 대해 정확히 알도록 노력해야 하며 개개인이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양국민의 사이에 이해와 신뢰감이 깊어지기를 바란다."

 지리상으로 가까운 두 국가, 고대시기  백제에서 배를 타고 야마토 왜까지 가는데 편도 6개월은 걸리지 않았을까. 지금은 비행기 타고, 또는 부산에서 배타고 하루면 갈 수 있는 나라. 강제동원 배상과 독도 갈등으로 한국민의 마음은 좋지 않은 상황에서 북핵에 대한 대응, 지소미아와 경제안보와 협력, 등 사실 모든 문제 뒤에는 미국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도, 급변하는 동북아시아 정세에 대처하는 노력을 하는 것은 국가와 국가, 정부와 정부와의 문제만은 아니리라. 국민 개개인의 역사인식도 중요하리라. 가장 큰 문제는... 일본 극우세력의 왜곡된 마음과 삐뚤어진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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