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수축사회, 축소사회2

켓세라세라 2022. 9. 2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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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의 한 초등학교였던가, 학생 수는 16명 남짓인데, 교장 교원 행정요원 급식요원 운전요원 합쳐서 20명 정도가 운영한다고 하니까. 서울경기인천 지역에 비하면 교육천국에 가깝다. 먹고사는 문제만 해결된다면, 굳이 억대 돈을 써가며 국제학교에 보낼 필요도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원어민에게 배우는 영어 빼고 말이다.



일견 합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아이들 특히 초등학교 시절에는 마음 놓고 뛰어 노는 것이 바람직하다. 책을 읽고 기본적인 산수와 과학에 대한 탐구 호기심은 키워야 하겠지만, 기본은 잘 노는 것이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바람직하다. 뽀로로만 노는 게 제일 좋은 게 아니다. 행복한 유년시절은 생산성 있고 자신감 있으며 창의적인 중 장년 인생과 직결된다는 것은 뭐 교육심리학을 언급하지 않아도 당연하다. 집중적인 학습이 필요한 시기가 인생의 사춘기와 맞다아 있는 것은 삶의 불일치, 문명의 불가피한 것으로 치부한다고 해도, 공부는 좀 늦게 해도 괜찮다. 청소년 시기에 조금의 사회적 일탈 또한 큰 문제가 되지 않을뿐더러, 적절한 방황은 길고 긴 인생에 기준이 되어 주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어른들이 기다려 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기다려 주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 바로 타인과 다른 가족들과의 경쟁심리 때문이다. 태권도학원부터 수학학원 영어학원에 보내지 않으면 앞서나가지는 못할망정, 뒤쳐질까봐 그렇다. 불안과 공포이다. 그런데 이건 거짓 불안과 공포이다. 타인의 삶에 들러리가 되기를 작정이라도 했는가. 불필요한 거품 경쟁이고 낭비이다. 불필요한 경쟁에 뛰어들 필요조차 없다.

축소사회, 수축사회, 좋은 기회이다. 이 기회에 사회적으로 암울하게 자리잡은 비교 경쟁귀신과 악귀들을 떼어내자. 그리고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재미나게 잘 놀 수 있게 어른들이 연구할 필요가 있다. 거창과 같은 학교... 자연과 아주 가까운...


기다려 주지 않는 한국사회. 이 심리적 억압을 돌파하고 건강한 성인, 범죄와 마약으로부터 자유로우며, 다른 성을 존중하면서도 인생을 즐길 줄 알고, 주어진 업무에 책임을 다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으로, 정의와 공정을 추구하는 성숙한 시민이 되는 것은 어렵다. 생산 소비 복지 이 모든 것은 한 사회구성원인 개인의 건강함에서 비롯되고 선순환이 이루어질 때 사회는 제대로 작동할 것이다.


수축사회, 저자 홍성국 국회의원은 대안으로 사회적 자본을 늘리거나, 공생과 이타적 삶을 강조한다. 긴박한 현실에 다소 나이브한 대안제시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틀린 말은 아니다. 죄수의 딜레마, 모두가 가족과 개인의 이익을 위해 다 같이 협력할 생각이 없을 때, 혼자 협력을 택하는 것은 바보이다. 또한 모두가 협력을 하는 문화에서 혼자 배신전략을 취하기는 어렵다. 공유지의 비극을 공유지의 희극, 다 같이 혜택을 보며 공존할 수 있는 공유지를 만들기 위해서 협력 지향의 문화를 만들고, 주어진 민주주의 룰을 잘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

뭘 비판하고 뭘 하자고 하기보다, 있는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경제상황에 맞춰 소비가 축소하든, 인구변동에 따라 사회가 수축하든, 어떻게든 사람들은 맞춰 살 것이다. 상수로 자리 잡은 것이 확고한 반면, 변수로 작용할 힘은 딱히 찾아 볼 수 없을 때, 미래는 예정대로 다가온다.


이변 없이 이탈리아 총선에서 극우정당이 다수당이 되었다. 여성 극우 정치인이 총리가 될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10년 만에 이탈리아 금융위기가 다시 언급되고 있다. 이탈리아 뿐인가. 영국도 파운드화가 폭락하고 있다. 한국의 노인들은 현재 국회에 계류되어 있는 기초연금 100% 지급 결정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리고 연금과 사회복지, 재정학 학자들 사이에서는 국민연금 지급 시기를 70세로 높이자는 주장을 과감하게 하기도 한다.

실패한 조문 외교, 한·일 정상 ‘약식 회담’, 한·미 정상 ‘48초 환담’, 영빈관 신축문제, 대통령의 비속어 파문과 그리고 보도한 MBC 고발...외교 참사니 촌극이니, 정치권과 언론에서 드잡이 싸움이 한참이다. 그런데 정말 이러한 뉴스들이 우리 삶에서 중요한가? 정치와 언론은 사회 윤활유에 비유를 많이 한다. 또는 세포내 효소와 같다고 한다. 윤활유가 부족하면 엔진은 과열되고 폭발할 수도 있다. 역사에서 혁명은 대체로 이와 같다. 그러나 반대로 윤활유가 엔진에 과도하게 주입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불필요한 가쉽과 정치권력 투쟁을 생중계하는 사회는 피곤하다. 정치과잉, 언론 과잉의 사회, 좀 수축, 축소되었으면 한다.

하기사 당원들이 민주주의 절차에 따라 자기 손으로 뽑은 당 대표를 하자 있다고 강제로 내 쫒을려고 하는 것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기소될게 뻔한 사람을 당대표로 뽑는 한국의 정당 행태를 보았을 때...

전혀 이상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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