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바람의 검, 신선조 When the Last Sword Is Drawn, 壬生義士伝, 2002

켓세라세라 2022. 9. 4.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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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람의 검, 신선조’는 존황양이파에 의해 막부통치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정치적 혼란을 배경으로 한다. 역시나 영화는 하급 사무라이들의 먹고사니즘으로 그들의 행태를 정당화 하면서, 비장하게 패배하는 막부군을 긍정적으로 묘사한다.

그들의 무사도란 것도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 국민들에게 강요된 국민 도덕이었고, 사회 이데올로기였다. 사무라이에 대한 이미지... 멋있게 검술수련을 하고 폼 잡지만, 실전 전투에서는 개싸움에 가까운 칼부림을 한다는 것도 일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는 사실이기는 하다.

출처 : 다음영화


인과 의보다 주군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면서, 자신만의 신념에 헌신하는 사무라이 이야기들은 "꽃은 벚꽃, 사람은 무사" 라는 말처럼 할복으로 알려진, 사(死)의 찬미, 미화, 변태성욕자와 같은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마치 자기 아들을 자살 돌격시켜 가문의 위상을 지키려고 한 신라 귀족들이나 2차세계대전 때 가미카제 특공대나 비슷 비슷한 미친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미시마 유키오란 소설가 놈은 ‘천황만세’를 외치고 할복 자살 까지 했으니,

그래도 영화는 그 정도 까지 막 가지는 않는다. 영화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얼굴의 배우 ‘나카이 키이치’의 훌륭한 1인 연기에 의해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개한다. 선하고 착하면서도, 결기 있고, 용맹하며 신념에 찬, 비장한 연기를 모두 한 사람이 소화해 내기는 쉽지 않는데, 하여간 가족을 위해 다소 비굴하더라도 돈을 벌고 모아야 하는 ‘가장’ 사무라이의 애환을 잘 그린 영화이다.

 

출처 : 다음영화


주인공 칸이치로는 무사는 번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어겼고 그래서 스스로 의를 저버린 무사로 생각한다. 따라서 자신과 가족을 먹고 살게 해준, 직업을 제공한 막부 편을 떠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것이고, 부끄럽지 않는 인생을 사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이 결국 일본식 의리일 뿐.

영화 후반에는 애써 비장감을 짜내려한, 잘 이해 안 되는 장면이 몇 있다.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왜 싸워야 하는지 별다른 고민 없이 싸우다가 죽는 것을 애써 긍정적으로 미화시킨다. 참 애쓴다. 짜증나기도 하고.

 

출처 : 다음 영화


하여간 우리 조선사회 양반은 문반과 무반으로 나뉜다. 그러나 같은 양반이라도, 조선사회에서 문반 우위의 정치는 두 번의 왜란과 호란을 거치면서도 변하지 않는다. 고려 때, 무신정변에서 정중부로부터 최충헌 일가의 막부통치 까지, 이 땅의 민초들과 왕족, 귀족, 지식인 계층은 확고히, 무부들, 칼잡이들의 통치를 다시는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합의한 것이다. 얼마나 정치를 무관들이 개판으로 했으면 그렇겠는가. 무식한 칼잡이들.

수작으로 평가받는 인기가 많았던 KBS 대하드라마 ‘무인시대’는 정작 2003~2004년에 방영되었다. 이의방, 정중부, 이의민, 경대승... 잘 만든 드라마였다. 지난 군부독재 정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시기에 자신들이 군인, 무관 출신이기에 고려 무신정권을 미화하려는 시도가 역사학계에 있었다. 이에 대한 반발로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의 정부 명칭을 ‘문민정부’라고 하면서 하나회를 과감히 숙정했으니, 다시 문관 우위의 정치 원칙을 다시 확인했다.


이와 다르게 일본은 다른 역사적 발전 과정을 거쳤다. 12세기 이미 일본은 가마쿠라 막부의 군사정권이 성립했고, 고쿠리 무쿠리, 고려와 원의 침공은 일본에 큰 변화와 영향을 미쳐, 지방분권이 더 가속화 된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일본 사회는 원나라 몽골군의 그 잔인함에 치를 떨었다고 하니까, 일정정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들의 독특한 문화의 형성, 그 시발점이 원 고려 연합군의 침공이었다는 점도 이채롭기는 하다.

침략자들을 물리치고나서 자신의 힘을 자각하면서, 지방의 영주와 중급 사무라이, 칼잡이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 땅에 대한 지배를 요구하면서 긴 내전의 시기를 거친다. 이후 전국시대, 센고쿠 시대를 거치면서 분열된 그 힘이 오다노부나가, 토요토미히데요시에 의해 통합되면서, 조선을 침공하기 까지 이른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다른 듯 하면서도 비슷한, 한국과 일본....삶과 죽음에 대한 일본인들의 극단적인 사고가 형성된 과정을 생각해 보면, 어쨌든 할복 자살은 자신들의 삶의 위기와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역사와 공동체 의식.... 더 더욱 없다. 패배와 항복을 수치스러워 하지만, 졌다고 인정한 순간, 강자에게 가장 약한 약자가 되어 누구보다 더 지배자를 섬기고 따르며 존경하는 일본인, 우리 눈에는 여전히, 앞으로 쭉 낯설 것 같다.

 

논어


무사도 정신과 선비의 정신.... 강한 정신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나, 전쟁과 전투에서 승리를 추구한 혈기지용의 무사도 보다. 자기 성찰을 통해 사회적 인과 의를 위해, 예를 이루어 인간의 선한 본성을 실현하는 ‘의리지용’을 실천하는 선비의 삶이 더 바람직한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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