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폭주사회, 문어의 꿈

켓세라세라 2023. 12. 1.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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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주라는 단어는 불길하다. 폭주기관차, 불나비, 폭주족, 이판사판, 마지막 불꽃이다. 내일은 없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브레이크, 제동장치가 있으나 그 장치가 고장 났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인지적 착각과 혼동이 불러일으키는 착시로 인한 좌충우돌에 주변의 불안감은 더 커져만 간다. 하마스의 폭주는 폭주랄 것도 없다. 곪아서 터진 참사에 불과하다. 가자지구 80% 인구가 국제원조로 살고 있었는데, 뭘 더 기대하겠는가. 오히려 이스라엘 극우세력의 폭주가 더 위험했다.

대체로 젊은이들은 폭주를 즐긴다. 청년과 악동은 사고를 쳐도, 그 뿐이다. 혈기가 기세다. 그리고 곧 그러다 만다. 영화 똥개의 정우성 같다. 아프면서 성숙해간다. 학생운동과 청년 운동이 왕성하다는 것은 그 사회의 좋은 기운이다. 뭔가 바꾸려고 하고, 불만족스러운 것을 고쳐나가려고 마음먹는 것은 다소 사회적 비용이 들더라도 그 사회에 희망이 있다는 의미이다. 대체로 개혁과 혁명은 젊은이의 몫. 이것은 변치 않는다. 홍위병의 폭주는? 미친 짓이었다. 노회한 정치인 모택동에 이용당하는 광기. 그러니 젊다고 모든 것이 이해되는 것은 아니다. 혹은 사회적 대의나 공동선, 공공선을 지향하지 않으며, 자신의 이익에 반대된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거센 폭주를 시전하는 청년은 이미 노인이다.

중장년층, 노년층의 폭주는 더 불길하다. 삶의 영고성쇠를 겪은 이들이 폭주할 것이 뭐가 있겠냐마는, 일반적으로 젊은이들을 무시하고 깎아내리며,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사회적 운에 의해 쌓아 논 자산을 무기로 영생과 젊음을 추구하는 것은 추하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자산이 있는 분들의 이야기다. 폭주노인의 질주, 일본사회의 한 모습이란다. 모든 것이 못 마땅한데, 술 마시고 깽판 치는 것은 빈곤 노인들의 폭주다. 그리고 상대적 가난에 의한 폭주는 그 자식 세대에게 금방 전염된다. 이제는 도박과 마약, 게임이다.

 

내려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운전을 하지 못할 정도, 브레이크와 엑셀레이터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의 연령이 되면 국가에 운전면허증을 반납하는 것이 맞다. 어차피 한국사회는 엑셀만을 통한 가속만을 강조해 왔지, 속도를 줄이는 브레이크에는 부정적이었다. 성장과 발전, 경쟁과 하면 된다정신, 효율, 도전과 성취의 가속만을 통한 속도전, 전격전, 총화단결의 질주로 살아왔다. 이 점은 남이나 북이나 비슷한 것 같다.

폭풍 질주에 잘 올라탄 이들은 계속 달려 나가고자 하는 속성이 있다. 그러나 그 속도에 적응 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이들, 경쟁에 지쳐 떨어진 이들을 위한 제동장치나, 울퉁불퉁 노면 길과 좌우 굴곡진 길에서 우왕좌왕하는 이들, 이들의 승차감을 높여주는 쇽업쇼바의 기능은 약하기만 하다.

괴멸적인 저출생, 생존과 생식의 불가함의 결과이다. 고령화, 공멸의 길일까? 나살고 너 죽자 식 저주의 굿판은 앗사리하기는 하지만, 불안하다. 이미 이 시그널은 불안정과 불확실한 시대의 전조이기만 하다. 더 차분하게 가라앉고, 더 절망하고 좌절하기 전까지 시끄럽겠지. 불안과 불확실성을 안고 살아야할 운명, 권력은 폭주하기 쉽고, 인간사 위기가 아닌 적이 없긴 한데, 왜들 이리 확신과 자신감으로 살아가는지.

출처 :  유튜브 꿈틀이,  www.youtube.com/@kkumteuri8256

현재 초등학생 사이에 유행하는 문어의 꿈이란 노래, 시의적절하다. 지구온난화로 한반도 주변 바닷 물 온도는 높아져 가지만, “깊은 바닷 속은 외롭고, 춥고 어둡고 차갑고, 무섭다그래서 꿈을 꾸는데 이곳은 참 우울해

폭주가 낳은 불안정과 불안, 불확실, 그 폭주를 막을 브레이크를 찾아 문어는 따뜻한 바다를 꿈꿀 것이다. 다수인 인생의 패배자, 루저들이 편히 쉴 곳은 과연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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