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이다. 현수는 EBS 다큐멘터리 K–교육격차 시리즈에 나오는 가상의 초등학생이다. 이 아이는 무기력하다. 하루의 시작을 학교에 와서야 세수하고 옷 갈아 입고 그리고 수업시간에 그냥 멍하게 있거나 졸거나, 학습에 의욕이 거의 없는 아이를 현수라고 통칭한다. 현수는 신도시가 아닌 원도심 슬럼가, 분양아파트 보다 임대아파트에서 더 많이 존재한다. 서울 경기가 그렇다면, 지방중소도시와 농어촌 지역의 현수는?
대한민국 중산층, 천당 위에 분당이라는 도시에 나누어 진 두 초등학교. 126명이 다니는 임대아파트 지역에 위치한 오리 초등학교, 이 학교를 기피해서 거리가 먼 곳에 자발적으로 다니는 800명의 중산층 초등학교.
게토도 아니고, 향소부곡도 아닌데, 임대아파트 주민과 아이들은 실질적으로는 그렇게 취급받는다. 이미 사회적 격차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행한 한국사회의 풍경이다. 한편에서는 중산층의 몰락, 그리고 견고해진 중상류계층의 등장, 격화된 지위경쟁, 인정투쟁 그 결과를 직시하자. ‘특권 중산층’재미 사회학자 구해근 교수가 쓴 용어이다.
나이와 세대는 586, 지역으로는 강남과 분당, 판교 넓게 봐서 용인 수지등, 직업으로는 의사 약사 법조인과 같은 전문직, 학력은 상위 대학, 소득은 상위 10%이내 월 소득 1000만원 이상, 이 계층은 라이프스타일, 교육 계급투쟁, 글로벌 전략 등을 통해 한국사회 지위경쟁과 인정투쟁을 리드하였다. 그 효과와 결과, 아다시피 부동산과 사교육 거품이다. 그리고 세계 최고 자살률과 최저 출생률이다. 이들의 마인드, 정신상태는 가족 이기주의로 똘똘 뭉쳐 있고, 지극히 성공지상주의적이다. 이들이 만든 교육제도, 입시제도, 이들의 입맛에 따라 아무리 교육개혁을 해도 이들의 욕망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이들의 마음이 평범한 대한민국 가정들과 다를 바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들이 욕망을 선도하고 리드한다. 교육, 소비, 라이프스타일은 전파되고 모방된다. 일반 중산층은 이들을 따를 경제력도 안 되는데다 이들의 삶을 따라 한다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도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티를 내지 못한다. 굳이 출세와 성공이 삶의 기준이라기 보다는, 자기 자식이 대물림 되는 가난의 매트릭스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지나서 생각해 보면, 산업화, 근대화, 민주화 과정이란 것도 결국 좌와 우, 진보와 보수를 넘나드는 특권 중산층의 의도대로, 입맛대로 무의식적인 강요 압력에 적응을 해 온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한 사회가 몰락하는 조짐으로 읽히기에는 이 문화적 압력의 힘은 너무 거세다. 어디 까지 갈 것인가, 현수는 그렇다 해도 그 욕망의 허접함과 허무함은 어쩔 것인가. 영어 유치원과 사립 초등학교, 국제학교나 특목고, 자립형사립고, 의치약수한과 IN 서울 상위권 대학, 서열과 지위를 놓고 벌이는 경쟁 속에 불가피하게 우리들 현수는 무의미하게 학교를 지금도 가고 있다.
교육의 역할을 ‘사회적 부모’ 가 되어야 한다는 다큐 속 선생님의 말, 그래도 희망이다. 출발선이 같을 수 없는 냉정한 현실에서, 배우는 것이, 사고하는 힘이 한 개인의 행복한 삶과 인간적인 삶에 결정적인 기회로 작용하는 시대에, 그 무기력을 삶의 활력으로 생의 기쁨으로 전환이 가능한 것도 불가사의한 교육의 힘이다. 인문학의 힘이다.
“ 저는 선두그룹에 있었잖아요. 저만 보면 나쁘지 않은 거라고 볼 수 있는데 저보다 뒤에 잇는 제 친구들을 봤을 때, 제가 가진 것을 좀 나눠주고 싶었어요. 삶을 살다 보면 더 힘든 구간이 올 수 있는데 혼자 그걸 이겨내는 것보다는 같이 이겨내는게 더 좋으니까 같이 할 것 같아요” - 다큐멘터리 중 아이들 인터뷰
학습격차, 돌봄격차, 정서격차, 건강격차, 관계 격차 등 전방위적인 교육격차를 경험하며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오리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그리고 수없이 현수를 현장에서 만나는 선생님들 아울러 응원합니다. 현수야 힘내! 그리고 현수 친구들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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