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정신

인공지능, 시간차와 불일치

켓세라세라 2023. 2. 17.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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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로봇, 인간의 차이는 무엇일까. 도대체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생각이 논리적인 연산이라면 인공지능도 생각하는 것이고, 사람은 연산능력 면에서 인공지능과 컴퓨터를 따라갈 수 없다.

정확한 인과관계의 파악보다 상관관계가 중요한 영역에서 AI는 일단 뛰어나다. , 전통적인 과학의 연구모델이 찾고자 하는 것은 인과관계인데,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연구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고 이런 저런 가설을 세워서 검증해봐야 한다. 이와 다르게 배경지식이나 가설 없이도 통계 알고리즘으로 분석된 데이터의 상관관계는 기존 과학이 발견하지 못한 새로운 패턴들을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의미와 목적, 가치와 관련된 특히나 사회적인 관계에 있어서 컴퓨터 기반 데이터분석은 취약하다. 상관관계 파악에 의한 양적인 분석이기 때문이다. , 나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는 가족, 친구, 친척을 파악해서 시각화 시켜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생 그리워하며 정말 보고 싶은 친구나 연인에 대한 관심은 전혀 알 수 가 없다. 데이터가 많을수록 통계적으로 유효한 상관관계도 많아지는 법. 이런 상관관계 대부분은 그럴싸하지만 어떤 상황을 이해하려고 할 때 우리의 판단을 방해한다. ‘건초더미가 커질수록 찾아야 할 바늘은 더 깊숙이 묻힌다.’

추세와 대략적인 설명은 가능하나, 핵심 요점에 다가서기 까지는 인간의 해석과 통찰은 여전히 필요하다. 법정에서 공방, 피고와 원고의 다툼, 그리고 양형과 판결에 있어서도, 어떤 사건의 원인이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나 보일 때조차, 그 원인과 사건 사이를 매개하거나 맥락화 하는 여러 다른 변인들을 최대한 고려해야 하는 주체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화학이나 물리, 생물학, 수학, 심지어 인문 사회과학의 교과서를 인공지능이 뚝딱 만들어낸다고 해도, 결국 배우고 학습해야 할 주체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 자신이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찬양 시를 지어 달라고 챗GPT에게 요구했더니, 편향적인 또는 정파적인 이유로 콘텐츠 생산이 가능하지 않도록 프로그램화 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반면 바이든에 대해서는 진실한 리더라고 평가했다나. 인공지능도 결국 인간의 편향과 편견을 답습한다. 데이터가 쌓이지 않는 새로움에 대해서는 아무 답도 내 놓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정보와 데이터는 결국 우리 자신의 지적 활동이다.

언젠가는 의미와 가치, 목적, 의지의 알고리즘을 구현하는 인공지능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시작도 안했는데, 규제와 책임을 준비하자는 목소리도 높다. AI와 로봇의 현재는 국가의 힘, 자본의 힘, 대기업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지식과 학문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변동은 지진의 전조현상처럼 이리 저리, 좌충우돌 할 것이다. 그 큰 변화의 중심에는 일자리, 저임금 노동의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과연 AI는 사람을 대체할 것인가, 보완할 것인가.

어차피 기술이 발전한다는 것은 경제와 사회에 긍정적 변화와 부정적 결과를 동시에 가져온다. 이는 과학과 기술이 사회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술이 새로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진다는 경제법칙은 없다. 이 모든 것은 자본과 사회 문화가 지향하는 힘의 방향, 의미있고 가치 있는 인간의 삶은 무엇인지 우리 스스로의 질문과 답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인간의 노동은 어떤 기능과 역할을 해야 하는 가, 그 내용과 형식은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하는가, 인공지능과 로봇의 자리매김은 어때야 하는가, 기술발전의 시간차에 따른 여유가 필요하다.

교육과 학습, 생산과 소비, 여가, 일에 대한 우리 자신의 관점의 변화 지점은 어디에 있는가. 결국 사회적 통념을 재 정립해야 할  숙고의 시간과  의무와 책임에 대한 윤리적 성찰을 준비할 차분한 시간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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