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이야기

신언서판(身言書判)으로 증명하라

켓세라세라 2023. 2. 15.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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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또는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해 내기는 쉽지 않다. 자신이 누구인지는 자기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법, 그것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더 낳은 사람이라는 것, 정보의 불균형, 비대칭에서 오는 문제, 좋은 사람이라는 것, 열심히 공부했다는 것, 실력과 능력 있고, 지적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보이거나, 증명해 내고 심사하고 선발하는 것은 어렵다.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 대체로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집안과 가문에 의해 결정된 듯하다. 노동하는 자, 공부하며 기도하는 자, 싸우는 자의 태생적인 구분은 한 개인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기본 침해였지만, 고귀하다거나 위세와 명예는 대대로 지키는 것이었고 자유의지에 의한 쟁취와 성취는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고 비슷비슷한 귀족 자제들 중에 관리 등용의 원칙으로 시험, 과거제를 실시한 것은 중앙집권 관료제의 기반이 되었다. 일정한 시험에 의한 구별, 인재선발, 자격증 제도는 시험을 잘 보는 능력, 공부를 잘하는 이들의 세상이 열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학벌경쟁, 학벌주의, 과열된 교육열의 원인이다. 한국만 특이하게 교육열이 높다고? 아니다. 여전히 일본의 그 열기는 잃어버린 경제의 영향으로 다소 식었을 뿐이고, 가고카오(高考)로 유명한 중국은 말로 해서 무엇 하랴. 인도의 교육열, 학벌 경쟁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이란이라는 사회도 마찬가지란다.

 

신분상승의 욕구, 욕망이다. 족보의 위조에 의한 새로운 가문의 탄생, 몰락 양반의 가계에 자신의 집안 이름을 끼워 넣는 것은 아주 쉬웠다. 신분 차이에서 오는 사회경제적 불리함 그 자체 보다, 꿀리기 싫어하는 인간의 본성, 중꺽마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그러다 보니 온갖 신분의 짝퉁 위조 세탁을 위한 노력은 눈물 겪기만 하다. 연애와 결혼 시장에서도 벌어지는 허장성세, 경제력 부풀리기는 값싼 외제차를 이용한 카푸어, 은행에 월세 내며 사는 하우스 푸어 까지, 공정한 경쟁? 신호 교란을 통한 무임승차의 시도는 애교로 봐줄 만 한 것 아닌가. 자연에서 개체 간 벌어지는 성선택 경쟁 결과인 허장성세, 위조 부풀리기, 모조품으로 속이기는 일반적이지 않은가. 아니다. 사기이다.

GPT에 의한 자기소개서, 독후감이라던가, 리포트, 오픈북 시험, 논문 작성과 심사에서 알람이 켜졌다. 학력을 증명해 내기가, 자신이 열심히 공부했다고 하는 증명 능력에서 이제 이 갖는 중요도, 효용은 아주 낮아졌다. 진즉에 자소서는 자소설이었고, 리포트는 위키피디아 짜깁기 아니었던가.

이제 더욱 신언서판 身言書判이 중요해 졌다. 는 문장력, 글쓰기로서 판단의 기준 아니냐고? 찾아보니 당나라 당태종의 인재 선발 기준이었던 바, 는 문장 글쓰기 실력이 아니고 글씨 글씨체가 아름다워야 하는 기준을 의미하였다. 자신을 포장해서 유능하고 실력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거나, 공부 안하면서 좋은 성적 받기를 원하는 것은 인지상정이기는 하지만, 그럴수록 스크리닝, 선별의 기술도 진화 발전하는 법이고, 신호 혼란에 대한 사회적 대응도 차분히 준비해 나가면 되고,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신호보내기 방법도 새롭게 고안될 것이다.

GPT 사용으로 스크리닝과 신호 보내기를 위한 사회적 비용은 증가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각종 대학이나 기관 기업은 표절을 확인하고 통제하는 규제로 또 인공지능의 힘을 빌려야 할 것이다. 빛 좋은 개살구를 구별할, 모조와 위조를 통한 기만을 하는 기술도 발전하는 만큼, 그냥 처음부터 정직하게 자신을 증명하면 될 일이다. 물론 자신을 속이는 것 보다 다른 일반 사람들을 속이기는 쉬운 세상이기는 하다. 그러나 영원히 가짜가 진짜를 대체하지는 못하는 법, GPT의 등장과 사용은 역으로 진짜 신언서판의 경쟁력을 다시 부각시킨다. 처음부터 진정성 있는 자세와 태도로 살아가는 것이 옳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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