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증오의 시간, 망조의 시간

켓세라세라 2023. 8. 13.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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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소설1984 의 오세아니아 사회는 오전 11시에 시작되는 2분간의 증오 시간이 있다. 반란군 대표자가 증오의 대상이기도 하고, 경쟁국 유라시아 군대가 주로 증오대상이다. 실컷 욕하고, 분노를 표출하면 스트레스가 해소되면서 당원들의 진짜 불만을 잠재운다. 그런데 증오대상은 중요하지 않다.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감정의 배출구의 기능, 그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이다. 공포와 불안, 위기를 한 점으로 응축시켜 감정을 폭발하게 한다. 독일국민의 불안 심리를 유태인에게 집중 몰아세운 것 과 비슷하다. 그래서 악의 평범성 기제는 원래 잘 작동한다.

미움과 증오의 뿌리에는 구체적인 어떤 사람, 집단이 있고, 그들의 생각과 말, 행동이 자리 잡고 있어야 한다. 이른 바 적이나 적국, 자신과 이웃, 우리 공동체를 해하는 어떤 존재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불가피하다. 그런데 싫다는 감정은 자신의 구체적인 이익과 별로 상관없이 그냥 나타나기도 하는 것 같다. 습관적인 혐오이다. 미움과 증오는 되려 정신건강에 이롭기 때문일까. 도파민과 아드레날린 분비는 스포츠 경기장에서 맹목적인 우리 편 응원과도 관련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기장 안에서 흥분해서 상대편을 욕하고 디스하고, 우리 편의 승리를 염원하지만, 경기장을 떠나면 평화로운 일상으로 되돌아온다. 꼭 이겨야 할 필요도 사실 없기 때문이고, 패배에서 승리를 우리는 보기도 하기 때문이다.

막말과 조롱, 비웃음, 저주의 한국 정치판은 이제 한 고비를 맞이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들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고, 특정 정치인을 옹호할 것이다. 이해가 된다. 그 과정에서 음해와 비방, 허위사실 유포와 문자 폭탄과 같은 부정적 현상으로 증폭된 갈등과 증오, 진영간 대립이 한 텀의 종착점을 향해 간다. 사법리스크? 코너로 모는 이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 더 집요하게 몰아세운다. 코너로 몰린 이들은 예견된 패배를 인정치 않으면서 날선 반응들을 쏟아낸다.

자존감이 떨어지고, 자신의 불행은 모두 외부 환경의 문제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은 인지상정인가. 박탈감과 자신의 실패요인을 외부에서 찾는 것은 자기 방어 심리일 수도 있다. 메시지를 공격하기 위해 메신저를 공격해도 좋고, 스피커 소리가 마음에 안 들어서 앰프를 교체하라고 요구할 수는 있다. 그런데 전쟁터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적에 의한 총격과 포격이 아니다. 아군의 오인사격과 포격, 폭격이 더 무섭다. 적이 아닌데, 총질을 하는 것은 비단 암세포만이 아닌 것이다. 묻지마 분노, 묻지마 살인도 마찬가지 아닌가. 이편 저편도 아닌 말리는 시누이가 더 미운 법인가?

토의와 토론은 합리적 의심과 반론을 보장하는데서 출발한다. 의견은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은 아니다.

정치 진영 간의 대립 갈등, 견제는 민주주의를 구성하고 합리적인 정책을 도출하는 수단이란 말은 뻔한 거짓말이다. 개인과 집단 간의 갈등이 사회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사회 교과서의 설명이 타당하려면, 정쟁을 하더라도 공동체의 문제를 잘 해결해왔다는 근거가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여러모로 소모적인 경쟁 갈등일 뿐이다. 유튜브, 공중파, 종편, SNS 등 미디어가 조장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시각은 오로지 한 면으로만 쏠려서, 정작 세심히 보고 풀어야 할 사회적 난제들은 모두 묵은 숙제들이 되어버렸다. 또는 비효율과 무능의 행정에 대한 감시가 느슨해져 버린다. 단적인 사례, 층간 소음 문제, 간호사 집단들의 태움 문제, 엉터리 민원 교권침해 문제 하나 해결하지 못한다.

물론 사회적 갈등을 옹호하고, 누군가를 혐오 증오하는 정치적 판단도 아예 틀린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젊은 열정으로 그러하다면, 때로는 설마’, ‘아마도’, ‘그럴 수도 있겠다분명하게 자신의 판단을 밝히지 않는 노인의 지혜가 더 필요한 법이다.

출처 : 나무위키

백범 김구 선생님은 백범 일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적이 우리를 누르고 있을 때에는 미워하고 분해하는 살벌, 투쟁의 정신을 길렀었거니와, 적은 이미 물러갔으니 우리는 증오의 투쟁을 버리고 화합의 건설을 일삼을 때다.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동포 간의 증오와 투쟁은 망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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