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은밀한 여배우의 공생활

켓세라세라 2022. 11. 27.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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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 마르크스 철학의 바탕이다. 이른바 유물론이다. 전셋집 월세 사는 아이의 생각과 재벌가 자재들의 생각은 다르다. 화장실 들어가기 전과 볼일 본 후의 마음은 다르다. 자기 아파트 한 채 소유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월세 전세로 떠도는 사람들은 기라성 같이 지어진 아파트를 보고 자괴감, 부러움, 분노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근검절약해서 그 다음 아파트를 소유한 사람은 그 많은 휘황찬란한 아파트 단지를 보고 또 어떻게 생각할까. 뭐 아파트 별거 없군~

  그렇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는 것에 토를 달 수 없다. 인간은 물질 적인 존재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사실이 가치로 연결 짓는 것은 오류이다. 이러 이러한 존재이기 때문에 비윤리적인 행위가 허용되거나 용납되거나 하지는 않는다. 불행하게 태어난 개인이 범죄를 저지른 다고해서 그 사회적 배경은 안타깝지만 그 범죄를 정당화하지 못한다. 그냥 이해. 참조할 뿐이다. 마르크스조차도 “물질적 생활의 생산 양식이 사회적․정치적․지적 삶의 과정 일반을 결정한다.”는 역사적 유물론을 주장했지, 개인 정신의 유물론을 주장한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 본인도 자신의 계급, 쁘띠 부르죠아로 출신이니까.
계급배반적인 존재는 역설적으로 인간은 정신적인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른바 의식이 존재를 규정한다. 개인정신의 측면에서 인간은 존재가 의식을 규정짓기도 하지만, 정신 의식이 반대로 존재를 만들어가는 존재이기도 하다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다. 온갖 사회혁명의 지도자들 중에서 하층민을 찾기 어려운 것은 여기에 있다. 당통 마라, 로베스피에르, 레닌, 스탈린, 카스트로, 체게바라, 지식계층이자 중산층 출신이다. 흙수저 출신이 아주 변혁적인 인물로 자라나는 것이 아예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뭔가를 바꾸겠다는 사회의식 형성은 독서와 같은 지적 자극이 가능한 경제력 있는 집안 출신들에게서 일반적으로 일어난다. 친일파 지주 집안 출신이 독립운동, 민족해방운동에 뛰어든 경우도 흔하다.


계급배반 투표 현상, 사회학자들에게 중요한 연구거리가 주어졌다. 선거에서 자신이 속한 계급 계층을 대변하는 정당에 투표하는 것이 상식적일 것인데, 각자가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식으로 정확하게 투표하지 않는다. 가난과 빈곤 선상에 있는 개인이 부자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에 투표하고, 그 반대로 부자들이 진보정당에 투표한다. 이것이 맞네 안맞네, 한국의 지역감정과 같은 특수한 상황이네 하면서 분석을 하지만, 복잡한 것이 인간의 심리와 정신인데, 불편한 논리적 불일치를 받아들여야지 어쩌겠는가.
하여간 사회적 약자서민, 노동자 농민을 위한다는 마음이 읽혀지는 한 여배우의 10 29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시상식 발언이 또 화제가 되고 있다. 특정정당에 더 우호적인 발언으로 받아들여져서 정치화된 인플루언서로 각인될 태세이다, 칵테일 좌파의 냄새를 맡은 것일까.


문화나 예술 분야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이들... 이들 인플루언서들의 소득 수준은 일반 대중들에게 넘사벽이다. 그들이 없이 사는 서민들 편에 서는 것을 뭐라 할 수 없다. 그러나 대중들의 마음은 간단명료하다. 가르치려고 하지 말라, 어느 한편에 서서 정치질 하지 마라이다. 당신들이 자식들 국제학교 보내고 유학 보내고 온갖 경제적 자유를 누리고 살면서, 어둡잖은 사회의식, 얄팍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렇쿵 저렇쿵 모자란 대중들을 계몽 교화한다는 오만을 보이지 말라. 뭐 이런 것 아니겠는가.
앞에서는 약자를 위한다고 타령하면서 뒤에서 자기 자식들 해외 유학보내는 586 운동권 출신 국회의원들.... 계급배반적인 공생활, 이들이야 말로 계급배반 투표를 강화한다. 아이러니다. 자기계급에 맞는 정치투표를 하는 것이 역사발전이고 사회발전이고 진보라고 가정 한다면, 인플루언서들의 의도치 않는 실수? 실패? 내로남불? 이중잣대의 마음?이 읽히는 발언은 오히려 계급배반투표를 활성화는 이 역설적인 상황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은밀한 여배우의 공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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