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읽기

하얀 리본 as weiße Band 2009 읽기1

켓세라세라 2022. 10. 2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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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의 문제인가, 아이들의 문제인가. 아니면 사회구조와 그 변동이 문제인가. 하여간 문제이다. 감독 미카엘 하네케, 오스트리아 영화이다. 2009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2010 60회 독일 영화상, 국제영화비평가연맹 회원들에 의해 ‘올해의 최고 영화'로 선정, 22회 유럽영화상.

출처 : 다음영화


화려한 수상에 어울리는 명작이긴 한데, 텍스트 독해, 영상독해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에게는 뭘 말하려고 하는 지 이해하기 어려운,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해서 따분한 진지충 마니아 영화이다. 코메디, 마동석류의 유쾌 폭력물과 호러, 스펙타클, 판타지, 멜로, 휴메니티 등과 아무 상관없다. 영상은 삭막하고 건조하다.

흑백필름이 선사하는 단조로움. 영상 정보 값이 낮기 때문에 자칫 졸릴 수 있다. 대형TV로 이 영화를 보기에는 집중이 잘 안 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핫 미디어, 영화의 특성을 살려 대형스크린에 밀폐된 어둠에서 제대로 봐야 할 것 같다. 그렇다 해도 많은 것을 숙고하게 해주는 영화이다. 왜 이 세상이 요모양 요꼴로 작동될 수밖에 없는지가 궁금한 이들이 봐야 할 필수 영화이다.

전문가들의 영화평은 찬사 일색이고 영화가 주는 명료한 메시지에 대한 해석은 아이들이 악마화 된 과정을 그렸다거나,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언급은 좀 조악한 평론들이고,...일반적으로 파시즘의 전조, 2차 세계대전의 비극 파시즘이 독일 사회에 등장하게 된 억압된 사회구조에서 비롯된 왜곡된 사회심리, 개인심리를 파고드는 영화로 바라본다. 타당한 해석이다.


그에 덧붙이자면 꽉 짜여진 사회구조, 피학과 가학의 상황논리가 빚는 변증법적 괴물정신의 등장, 그로 인한 사회의 파멸과 개인의 붕괴는 헤겔의 절대정신과 정반대에 서있다. 영화는 프로이드 심리학과 마르크스 사회학을 결합한 에리히 프롬의 분석과 일맥상통한다. 근대라는 시대에 성장과 발전, 진보의 뒤편에 우리의 나약하며 악에 쉽게 물든다. 사과상자가 썩어서 개별 사과가 썩기도 하지만, 이미 오염된 개인인 사과들은 곪아가는 사과상자를 수수방관한다.

사회화 과정에서 개인에게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는가. 또한 사회의 측면에서도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는가.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학습해야 하는 사회적 규범은 한 개인의 동의내지 자연의 본성과 맞지 않는다면 이것이 문제이다. 나의 동의를 거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적 규범들은 내가 하고 싶은 행동과 배치될 수도 있고, 결국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도록 강요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성애에 대한 관심, 자연이 부여한 본성을 거스르는 엄격주의 프로테스탄츠의 문화... 사회와 개인의 영혼에 프로토콜 오류를 일으킨다.

그리고 사회 규범의 다양성, 상대성은 개인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선택이 가능한 다양한 옵션 앞에서 영화 ‘정복왕 펠레’에서 보여지는 선하고 바른, 좋은 선택을 한 개인이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의심과 기만, 위선, 그리고 불만, 갈등, 폭력의 기운은 높아져만 간다. 그래서 잘못된 규범이 한 개인에게 스며들어 그것을 다시 자식들에게 다시 전수되어 문화로 자리 잡게 된다. 전수될 뿐만 아니라 더 나쁜 쪽으로 진화한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듯, 새로운 악이 구악을 압도한다. 변증법적 퇴보의 수순이다. 도덕적인 측면에서 그렇다.

사회 차원에서 사회화 과정도 살펴보면, 사실 사회화 과정 자체는 강제를 수반한다. 양육과정과 교육과정에서 ‘사랑의 매’로 포장한 폭력이 사라진 것은 정말 오래 되지 않았다. 본질적으로 사회화 과정은 기본적으로 특정한 사회 질서를 재생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전형적인 개인을 ‘만들어 내는’ 일이다. 다양한 개인을 전형적인 개인으로 만드는 과정에서는 반드시 모가 나고 울퉁불퉁한 곳을 다듬고 쪼는 일, 사회와 자본의 논리에 순응하는 개인을 양산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리고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두들겨 패는 것 보다, 온갖 미디어가 제공하는 설탕과 콜라에 중독되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성적인 이미지 추구와 상품구매만이 욕망 실현의 방법임을 알게 해, 영원히 충족할 수 없는 욕망의 수렁에서 결코 헤어나오지 못하게 한다. 소비사회 이데올로기?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생활습관 아비투스가 더 가깝지 않는가?

어찌보면 사춘기 시기 격렬한 사회부적응 현상은 이후 사회에 의해 다듬어져야 하는 자신만의 특질을 놓치기 싫어하는 자연이 부과한 저항현상인지도 모르겠다.한 개인이 어떤 사회에 태어나서, 규범을 내면화하고 그것을 다시 재생산하고... 그 공동체에 드리운 암운, 불길한 기운.... 1차세계대전 독일 사회....그리고 히틀러 2차세계대전...지금의 한국사회....어찌 한국만의 문제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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