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은 낙동강 남쪽에 위치하며, 서남쪽에 창원시, 서쪽으로 대략 40킬로 거리에 김해가 있다. 북쪽으로 50킬로 고령 대가야가 위치한다. 낙동강이 ㄴ 모양으로 흐르는 바, 아라가야의 위치는 고령과 김해의 삼각형 꼭지점에 위치한다. 가야읍에 위치한 말이산 고분군에 올라 보면, 고즈넉하면서도 쇠락해가는 경남의 작은 분지지역 도시, 함안 안라국에 쓰인 편안할 安자가 왜 쓰였는지 알 수 있다. 나지막한 구릉에 위치한 고분군, 주변 지세와 어우러져 시간이 멈춰 있는 기분이 든다.
광개토대왕비에 나오는 안라인수병(安羅人戌兵)을 아라의 군대 수비병으로 해석하면, 아라가야 지배자들은 의외로 고구려에 협조적이었을 수도 있다. 김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마갑총 말갑옷은 고구려가 안라가야 지배자에게 협력의 고마움으로 준 선물일 수 있다. 반대로 고구려 군대로부터 노획한 전리품이란 견해도 있으나, 부장품은 위세품이기 때문에 내세에서 현세의 재현으로 이해하면 자랑할 만한 것이어야 하는데, 적에게서 뺏은 것을 자랑한다는 것은 좀 어색하다. 큰 나라 강력한 고구려로부터 인정받은 것을 내세에서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어쨌든 통상 연맹과 맹주의 개념으로 가야연맹을 이해하는 것은 좀 아닌 것 같다. “가야 여러나라가 안라를 형(兄) 혹은 아버지(父)로 여겨 오로지 안라의 뜻을 따른다”는 <일본서기> 흠명기·544’조. 상대적으로 김해의 금관가야와 고령의 대가야가 가야의 대명사, 맹주로 생각되어 가야 여러 나라들을 지도 리드해 나갔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김해 금관가야가 폭삭 망한 시점인 5세기 초반부터 6세기 초반까지 아라가야는 거의 큰 타격 없이 신라와 백제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하는 점을 보았을 때, 아라가야 및 기타 여러 가야소국들 입장에서 금관가야든 대가야는 도움 되면 그뿐이지, 뭐 그렇게 충성을 바칠 대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라가야는 제일 먼저 신라에 투항해 버리기도 하니까.
다 같이 뭐 하자 할 때, 열을 내며 주도하는 이가 있다면, 처음에는 그 열의에 감동해 긴가민가 하면서 좀 도와주다가, 아닐 것 같으면 과감하게 발을 빼는 것이 현명하리라. 이처럼 자기들의 이로움에 따라 관망하거나, 도움 될 것 같으면 돈이든 병력이든 조금 내 놓으면서 생색내거나, 정작 전쟁에서 패할 것 같으면 제일 먼저 도망하는 게 상책인 관계, 그다지 발전 지향적이 않다. 이전에 벌써 신라와의 국경은 백제 군대가 지키고 있는 상황에서, 그래도 가야에 우호적이었던 백제 성왕의 554년 관산성 대패로 낙동강의 패자는 신라로 확정지어지고 있었다.
과거에 얽매이기 보다, 현재를 보고, 미래를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은 1400여년전 함안에서 살았던 이들도 마찬가지이다. 남은 사람과 떠나는 사람. 일본 나라현 구사츠시 아나무라 마을에는 이 마을 주민들이 모시는 '안라신사(安羅神社)'가 있다. 일본 4~5세기 고분시대 유물, 가야계 유물이 압도적이다. 말이산 고분에서 함안에서 일본 긴기지역으로 이주해 간 이들의 마음을 떠올려 본다.
“아부지, 형님! 떠 납시데이. 신라도 백제도 지긋지긋합니더. 이제 백제도 자기 살길 바쁜데, 우릴 어찌 건사하겠십니꺼. 그래도 먼저 왜 야마토라는 곳에 먼저 가 있는 셋째 말에 의하면, 바다 건너 저 땅은 농사짓기 좋은 데라 합디다. 또 우리가 가진 철기 기술은 우대한답니다. 그러면 우리 잘 먹고 잘 살 수 있어예.”
“둘째야, 이 형은 그 먼 바닷길 늙은 부모님을 모시고 가기 어렵데이. 또 조상 묘 관리와 제사는 누가 지내겠노, 들어보니 신라 사람들도 그리 박하지 않고 살만하게 대우해 준다고 하데. 때가 되면 만날 끼니까. 니는 떠나거라,”
권세와 위엄을 보이기에 좀 왜소해 보이는 고분들, 이 땅의 지배자들의 고군분투를 느끼기에 턱없이 모자란 사료와 유물들. 그럼에도 전쟁을 피해, 삶은 이어져야 한다. 일본 역사학자 이사와타리 신이치로에 의하면, 도래인이라 칭하는 한반도 서남부 출신들이 475년부터 600년까지 125년 동안 적어도 100만명이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 건너갔을 것으로 추정한다. 반도에서 열도로의 디아스포라의 현장. 함안, 아라가야, 말이산 고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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