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예끼 마을, 선성현 문화단지를 둘러보고, 선성수상길 부교를 걸으며 산책하다, 그리고 이육사 문학관으로 향한다. 그 분의 삶을 어느 정도는 알기에 마음이 경건해진다. 저항시인으로 소개되어 국어 교과서에 시가 실릴 만한 분이 아닌데, 저항이란 말도 소극적으로 느껴진다. 시인은 그냥 취미 활동에 불과하고, 직업이 독립운동가이자 혁명가에 어울리는 분. 이육사 선생의 마음이 느껴진다. 그 치열한 일제와의 투쟁의 삶이 가능했던 것과 안동 지역과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17번의 투옥, 40년의 생애에서 성인이 된 후 감옥에 더 오래 살았던 분을 그래도 스스로 부끄러워하던 윤동주 시인은 같이 기억할 만하다. 그러나 국화앞에서 누님을 읖조리고, 마쓰이 송가를 부르며 일제 동원령에 앞장섰던 시인이나, 목이 길어 슬픈 짐승이라고 친일에 적극적이었던 이들과 같은 반열에서 민족시인이니 저항시인이니, 국어 시간에 이육사 선생의 시를 배운 것은 한편의 코메디이다.
계속되는 독립운동과정에서 숙고의 숙고를 하다 내린 결론, '무장투쟁', 선생이 의열단 활동을 한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의열단 산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에 다니면서 해방된 조국의 미래는 사회주의에 있음을 확신했던 선생이었다. 그 관련 시가 ‘한 개의 별을 노래하자’에 있지 않은지 조심스럽게 추론해 본다.
조선 왕조의 몰락, 패망에 대해 조선 민중들은 나라 말아 먹은 왕과 왕족들에 대해 그다지 연민의 정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한 왕조가 몰락하고 복귀 운동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희귀한 역사이다. 그만큼 구한말의 폭정은 일반 백성 입장에서 지긋지긋했으리라. 그런데 관료로서 자부심과 경제적 기반을 다져온 정통 양반귀족들은 소수 일본에 귀의한 친일 귀족 가문을 제외하고는 상실감이 컸을 것이다.
그러니 안동 지역에서는 봉화 영주등의 의병들과 연합해서 의병활동이 활발히 벌어졌고, 그 의병장의 이름은 이중린, 류시연 선생의 이름으로 기억되고 있다. 이어 대한제국이 망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이 많이 나온 곳이 안동이다. 순국 지사 70여 분 가운데 열 분이 경상북도 안동 출신이다. 퇴계 이황의 후손인 이명우 선생은 고종이 사망하자“ 나라를 잃고 10여 년 동안 분통함과 부끄러움을 참았으나 이제는 충의(忠義)의 길을 가겠다”다며 자결한다. 그리고 그 부인 권성 또한 남편을 따라 자결한다.
충신, 지조와 절개를 지킨 독립지사, 투사들이 많다는 자부심이 느껴지는 곳이 안동이다. 진짜 양반들도 많았을 뿐 아니라, 독립유공자들도 타 지역에 비해 많다. 대한민국 전체 독립유공자8689명 중 경북 출신이 1404명이다. 경기도가 728명이니까. 인구 대비해서 타 지역 보다 독립운동에 뛰어든 이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시군 단위로 평균 20명 정도가 독립유공자인바, 안동은 247명으로 10배나 독립유공자들이 많다.
단순히 자신의 계급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나라가 망하거나 말거나, 자신 집안의 영달과 개인의 출세 성공과는 관계없는 가치들이 유교의 가르침이다. 어찌 보면 공동체, 민족 공동체, 국가 공동체가 지속가능하게 하는 것이 충과 의, 정의이다. 양반이라서 그런가, 나라를 빼앗겨 지배계층의 지위가 박탈되거나 출세의 기회가 박탈되어서 그런가. 아니다. 좋게 생각하자. 세속적인 이들이 한낮 지위경쟁을 하고 인정투쟁에 빠져 있을 때, 숙고하고 생각하며 대의를 위해 자신을 던질 수 있는 이들은 고결하다. 이육사 투사는 그래서 고귀한 양반 가문 출신의 독립운동가이다.
문학관을 돌아보며 그 긴 투옥생활과 고문으로 육신이 힘들었던 그 분의 '아편'이란 시가 애절하게 다가 왔다. 고문에 못이겨 조직을 일제 경찰에 자백했던 처남을 못견뎌해서 장인에게 자신의 부인을 데려가라고 했던... 문학관 방명록에 쓰여진 “ 멋지세요” “멋있으세요” 라는 다수의 글들.
그렇다. 인생 뭐 별거 있는가, 멋지게 한생 사는 것도 괜찮으리라. 이육사와 같은 분을 다수 배출한 안동, 멋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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