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멀지 않은 이야기이다. 19세기 말 스웨덴에서 덴마크로 농업 이주한 가난한 늙은 아버지와 어린 아들... 진하고 잔잔한 감동을 추구하는 분들이 좋아할 영화이다.
장원, 농장을 중심으로 한 어느 덴마크 마을, 북유럽의 추위마냥 척박한 땅, 그 만큼 사람들은 우직하면서도 소박하다.그 시대, 그 시절, 그랬을 법한 인간 군상들의 모습들이 그려진다. 삶이 투쟁이고 먹는 것이 생존인 시대, 그런 시대와 사회를 살지 않았어도 감정이입하며 그 서사에 공감할 수 있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가문, 집안의 3~5대 조상들의 역사를 한번 따져 보시라.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이 비슷비슷하게 다 내려온다.
농장주의 바람기와 그것을 감수하며 사는 농장 여주인, 그리고 농장주의 사생아와 그 어미, 농장 아들과 낮은 신분 여성과의 사랑, 마름인 감독자와 농업노동자의 갈등 등.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에 나오는 이야기들과도 비슷하다.
주인공 펠레는 덴마크 아이들 사이에서 스웨덴 출신이라고 멸시와 따돌림을 당하고, 아버지는 비교적 부유한 과부와 재혼을 통한 덴마크 정착을 꿈꾼다.
먹고살기 위해 혐오와 배척, 질시와 따돌림이 기다려도 배를 타고 비행기를 탄, 이주의 역사, 우리 역사에서도 연해주로 일본으로 하와이로 중동으로 먹고 살기 위해 일하러 떠난 이들... 그들 앞에 놓인 세상, 그들이 만들어가는 세상...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우리 옆에 가까이 있는 베트남, 몽골, 카자흐스탄, 파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필리핀 이주 노동자들... 오지 말라고 장벽을 쳐도 미국 멕시코 국경을 넘는 중남미 히스페닉들...국가가 거의 사라지다 시피한 시리아 같은 국가에서 지중해를 넘어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
일요일 침대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려웠나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가난과 끝이 없을 것 같은 노동에서 해방은 무엇일까. 바로 펠레가 정복해야 할 세상이란 그것인가. 신세계 미국은 그 꿈의 땅이었을까?
펠레가 농장을 떠나면서 그 이후 이야기가 궁금해지기 마련인이다. 원작이 소설인바, 그 소설을 쓴 이, 마르틴 안데르센 넥쇠이다. 그가 쓴 소설<정복자 펠레 Pelle erobreren> 에 의하면 소년은 결국 미국으로 건너가서 사회주의 노동운동 지도자가 되었다고 한다.
영화에서 보여는 인생사들...사랑 때문에 고통스러워 하고 죄를 짓고 그리고 결혼하고, 재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미워하고, 싸우고...그리고 늙어가고, 그리고 떠나야 하고...또 그리워 하겠지. 부처님의 삼단 논법... 인생은 고통이다. 그리고 고통의 원인은 욕망이다. 그러니 욕망을 억제하거나 제거해서 해탈할 수 있다. 삶이 욕망이고 고통이다.
묘한 느낌이다. 자본주의가 성숙하지 않은 19세기 말,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이념이 막 퍼지기 시작한 시점...펠레가 마주할 세상, 정복할 세상은 무엇인가? 낮은 생산성과 그에 맞는 착취를 하는 봉건적 착취의 세상, 그리고 발전하고 있는 미국 자본주의, 그리고 아메리칸 드림의 땅에서 만들어 가야 할 세상 사회주의....
그 삶과 욕망과 고통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미래를 향해 가는 소년 펠레, 일요일 아침에 커피 한잔이 대수랴....그가 정복하고자 하는 세상, 이미 정복이 끝났는가? 아직도 정복할 그 무엇이 남아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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