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따뜻해지는 마법 같은 영화다. 2002년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해에 황금 종려상은 ‘피아니스트’였다.
배경이 헬싱키 근처 어디인 것 같은데, 헬싱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도시로 꼽히는 곳 아닌가? 영화에는 웃음이 없다. 어둡고 우울하다. 구름이 잔뜩 낀 날씨에 언제든지 눈이 올 듯한 분위기. 사람들도 무뚝뚝하다. 그리고 미남미녀, 선남선녀도 안 나온다. 주로 중년 이후의 등장인물들. 그들에게는 미래가 없다. 과거 또한 없다. ‘이루마’ 역을 맡은 ‘카티오우넨’의 연기는 외로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외로움 그 자체다. 쓸쓸하고 외롭고, 춥다.구세군에 의해 구호를 받고 살아가는 빈민가 주민들...행복하고는 거리가 먼 듯한 이미지들...
핀란드 사람들의 그 표정이 참 묘하다. 뚱한 것은 아니고, 생각이 표정으로 드러나기는 하는데, 감정을 절제하는 것은 아니다, 정이 없거나 사람들이 못돼 먹었기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잘은 모르지만 핀란드 사회에서 웃음이란 것이 여유와 존중, 사랑의 표현이 아님은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 저런 표정으로 살아가면서 가장 행복한 사회라니...
그런데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은 무슨 마법의 조화인가. 빈민들의 마을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소동들...갑자기 기억을 잃고 부상을 입은 주인공의 등장.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생색을 내거나 나중에 꼭 보상하겠다는 뭐 그런 거 없다. 어려운 사람이 있네, 그래 밥 주고 잠자리 줘야지. 그런데 도움 준 사람도 어렵다는 거. 그리고 나 어려워. 좀 도와줘, 스스럼없이 먹을 것이든, 옷이든 일자리든 거침이 없다. 물론 양아치와 강도도 등장한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정부의 세금 징수에 진저리를 친다.
전혀 감정 전달, 감정 이입을 잘 못할 것 같은 사람들이 사실은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는 사실. 얀테의 법칙하고 관련이 있다. 핀란드 인 자신은 모르지만 노르딕 사람들을 표현하는 평등문화. 인간은 같이 사는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으면 자신도 그 행복으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까 삶의 만족도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혜택 그 자체보다는 그러한 혜택이 비교 대상이 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많은가 혹은 적은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리라. 영화 속의 핀란드 빈민촌, 다 거기서 거기다. 자랑할 것도 뻐길 것도 없다. 사회경제적으로 하향 평준화된 평등한 사회가 오히려 행복할 수 있다. 빈부 격차, 이것이 크지 않는 상태에서 사회적 형평성은 커지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일반적으로 가난, 빈곤, 궁핍에 빠진 이는 판단력이 약해진다. 자신이 처한 처지에 골몰하다보니, 주변에서 접하는 많은 정보와 지식, 필수적인 인간적인 감정에 무뎌지고 만다. 이른바 터널시야효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부정적인 현실에서도 인간은 인간적인 가치를 추구하며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즉 외로움 두려움 그리움 사랑과 같은 감정을 잘 간수하고 살면 가난 빈곤 궁핍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감독의 연출 의도는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우리 인생은 자랑할 것도 뻐길 것도, 거창할 것도 없다. 모두 다 외로운 인생이다. 서로 도와주고 도움받자. 외로운 사람끼리 자주 보면서 의지가지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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