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6시간 후 너는 죽는다, You Will Die In 6 Hours, 2024

호요토호 2025. 2. 25. 10:29
반응형

공허한 삶에서 확신만큼 허약한 것은 없다. 무의미한 노력만 하고, 진짜 노력은 없는 상황의 연속이다. 숭고한 대의와 자신만의 정의에 몰입 헌신, 열광은 불안한 삶에 대한 불평 불만을 타인에게 돌리는 게으른 생각에서 비롯한다. 비겁하다.
낡은 사회구조는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 혈관과 통로를 비좁게 만든다. 녹슨 산화철과 포화지방이 동맥경화의 원인인 것처럼, 생각은 무뎌지고, 단단해진다. 꼰대와 같은 경로 의존적 사고만 남는다. 이제는 직접 문제해결을 하겠다고 나서는 정의봉을 든 십자군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본인이 대식세포인 것처럼 이리 저리 단죄할 것들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황홀해진다. 도파민 중독이다.

출처 : 다음 영화

  누가 더 잘못 했는가. 일일이 사회는 판정하지 않는다. 그냥 양심에 따라 너의 죄가 더 크고, 내 잘못은 그 보다 못해도,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하면 될 일 대부분이다. 도덕적 문제를 형벌로 처리하는 것도 마땅찮은데, 타인의 과거 행적에 대한 몰이해를 바탕으로 시대의 다면적 성격은 간단히 무시한다. 용서 없는 단죄만이 해법이 아님에도 다양한 형태의 가치 충돌은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떻게 살아도 제 자리인 것’, 결국 ‘혼자 인 거’를 안다는 것은 체념이다. 미래의 가능성, 희망을 열어두어야 할까. 아니면 자기 멸시와 존재의 모순을 감내하고 미래가 더 나아지지 않는 다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할까. 이도 저도 아닌데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 6시간 후 죽든, 60시간 혹은 6년, 60년 뒤에 죽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인생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다. 그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내려놓거나, 물러서거나, 스스로 의미 부여를 하거나, 만족감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미래란 시간, 가능성과 희망, 더 나아진다는 것도 방향과 목표가 맞아야 하나, 그 마저도 모호한 현실은 그 자체로 삶의 불안을 조성한다.

주인공 박주현(정윤 역), 뛰어난 연기로 앞으로 기대되는 배우이다. 출처 : 다음 영화

현실적인 타개책을 찾는 것이 지쳤을 때, 퇴로가 열리는가. 이러나저러나, 예지든 예언이든 믿기 힘든 현실이고, 반신반의, 의심이 최선의 선택이다. 여 주인공은 운명의 장난에서 그래도 어디론가 찾아가고, 질문하고, 삶의 심연으로 다가서려고 한다. 씩씩하다. 의미 있는 노력이다. 용기 있다.
의미 없는 삶에서 버티려면 용기 있는 척, 노력하는 척이 아니라, 진짜 용기, 진짜 노력이 필요하다. 세상은 나와 같은 정의감을 가진 사람이 적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삶의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도 있다. 나는 영화나 연극, 소설의 주인공이나 영웅이다라는 생각, 정의 기준은 내가 정하는 only 하나이고 이 세상을 내가 구원한다는 것은 자신이 뇌에게 선사하는 달콤한 사탕 도파민이다. 쉽고 편안한 생각이다. 때문에 그 유혹에서 벗어날 힘이 필요하다. 살아가는데 맷집이 역시 필요하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