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난중일기’였는지, ‘성웅 이순신’이었는지, 자세한 기억은 없으나, 학교 단체관람 차원에서 네 다섯 번은 보았다. 영사기 성능이 안 좋아서, 중간에 잠깐 영화가 끊기기도 하고, 영화시간을 줄이기 위해 스토리 전개가 엉망이 될 정도로 필름을 잘랐던 것 같다.
그래도 좋았다. 왜군의 만행에 치를 떨다가... 화면을 꽉 채운 거북선의 등장과 그 맹활약에 관객 모두는 만세를 부르고,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이순신 장군이 억울하게 끌려가는 장면에서 관객들, 같이 목 놓아 흐느꼈다. 배신자 원균은 무능한 역적이었고, 덩달아 원씨 성을 쓰는 아이는 놀림감이 되었다.
그 이후 ‘불멸의 이순신’ KBS 드라마는 역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러던 중 ‘천군’이라는 영화가 나왔다. 그 당시 유행하던 타임슬림과 시대적 염원을 담은 남과 북 군인들의 연합작전과 이순신 장군의 흑역사? 진중하고 성실한 이순신 장군이 젊었을 때, 과거에 계속 낙방해 추레한 공시생, 인생 낙오자로 그려진다. 출연 배우는 화려하다. 박중훈, 김승우, 황정민에 마동석까지, 여배우로는 공효진이 출연했다. 코미디도 아니고 장렬함과 통쾌함도 덜한 그런 영화, 어설픈 CG가 조합된 영화로 혹평을 받았다.
또 그 당시 장편의 불멸의 이순신을 보고 나름 역사인식이나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해가 깊이 있게 심화되는 시점에서 이순신 장군을 희화화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것일까. 그런데 장렬함과 비장함이 떨어지고, 감히 우리의 영웅, 성웅 이순신 장군을 코믹하고 어리버리하게 만들어? 이런 감정이 영화 흥행 실패에 주 원인이었을 것이다.
영화는 영화다. 남과 북이 힘을 합쳐, 민족의 영웅이 되지 못할 뻔한 이순신 장군을 돕고 격려해서, 왜적을 물리치는 위대한 장군이 된다는 스토리는 그리 나쁘지 않다.
그러나 영웅에 대한 기억을 쉽게 바꾸려는 것처럼 보이는 영화는 성공하기 힘들다는 선례를 만든 영화 ‘천군’. 사실의 역사와 가공의 픽션이 더해지는 것이 역사 영화이긴 하지만, 거북선 등장에 만세를 부르고, 끌려가는 이순신 장군에 슬피 울었던 대한민국 장년 세대에게 이미 선택되어 있고 관리된 기억과 이미지는 넘어서기 어려운 일이다.
반대로 상상력을 통해 관리된 기억을 뛰어 넘어서는 시도를 할 때, 꿈의 서사인 영화는 더 풍부해진다. 그런 차원에서 이순신 영화를 다룬 작품들, ‘명량’, ‘한산, 용의 출현’, ‘노량 죽음의 바다’를 보기 전에 ‘천군’을 한번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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