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이야기

이주와 정착의 한국사

호요토호 2025. 2. 11. 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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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몽의 고구려 건국은 부여족의 활동과 관련이 있다. 말 달리자이다. 고구려는 낙랑과 대방을 멸망시키고 현도군을 중국으로 쫒아 버렸다. 백제 건국은 주몽 가족의 작품으로, 부인 소서노와 그 아들 온조가 백제를 세웠다. 백제 왕족은 부여족의 후손으로 자처한 바, 백제 성왕은 자신의 나라를 남부여로 지칭했다.

부여 금제 허리띠 장식 , 출처 : 우리역사넷

신라도 이주민들이 세운 나라이다. 박혁거세와 6부가 처음부터 경주평야에 있지 않았다고 추정한다. 중국 역사서는 신라인들이 과거 중국 秦, 북부 지역에서 이주했다라고 기록하고 있고, 따라서 멀고 도 먼 한반도에서 만리장성 쌓는 이야기들이 경상도 지역에 전승되어 내려오고 있다. 또는 고조선 유민들이 주 세력이었다고도 한다. 이들은 농사를 짓지 못해, 마한인들이 땅을 나누어 주고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물론 어디나 기존에 살고 있는 토착민이 있었을 것인데, 백제의 마한 정복, 신라 지배집단과 토착민들의 갈등이 설화 형식으로 전승되어 내려오고 있다.
한반도에서 일본 열도로의 이주는 더 자연스러웠다. 일본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스사노오는 한반도 고천원에서(한반도 고령으로 추정하기도 한다)신라 소시모리(소머리)를 거쳐 일본 이즈모 지역에 정착했다. 또는 연오랑 세오녀, 천일창 신화도 일본 열도로의 이주를 보여준다. 신라 박혁거세 당시 이미 호공이라는 왜인이 핵심 신하로 활동하고 있었고, 신라 석탈해와 가야의 허황후도 이주민 집단이었다. 신라 김씨 성골들은 중국 한나라에 투항한 흉노족의 후예로 자신을 기억하기도 한다.
가야계, 그리고 백제계의 일본 정복. 정작 일본인들이야 쉬쉬하지만, 철제 무기와 갑옷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배에서 말(馬)을 내리는 그 토기 유물들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는가.(일본열도에는 원래 말이 없었다) 기원전 6세기 진무(神武)왕의 야마토 정벌은 뻥이다. 기원전 6세기라?? 역사학자들은 실제로 4세기 오진왕의 기록을 바꿔치기 한 것으로 본다.

6세기, 군마현 『하니와 무장 남자 입상 (埴輪武装男子立像)』. 일본 국보 (国宝) 도쿄국립박물관 (東京国立博物館) 에 소장 , 출처 : 일본 위키백과 팸

야마토는 지금 나라현, 교토, 오사카를 포함하는 관서지방인데, 이 지역 정벌과 관련해서 4세기 오진왕(應神)은 “동쪽에 아름다운 땅이 있어 푸른 산맥이 4바퀴에 걸쳐 형성된, 천하를 다스리기에 어울리는 땅이다.”라고 한다. 아름다운 땅과 천하를 다스리기에 어울린다는 것은 농사짓기 아주 좋은 땅이라는 의미다. 미국 여성 역사학자 존 카터코벨은 이들 정복주체 세력을 백제와 가야의 부여족으로 본다. 그리고 일본은 고분시대로 한차례 업그레이드 한다. 그리고 고구려가 남진할 때 마다, 백제와 가야에서 건너간 이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기록된 수많은 왜인 왜병. 그 많은 중국계 성씨들, 이후에도 이 한반도에는 많은 사람들이 더 들어와서 섞여서 살 수밖에 없었다. 북방에서 말갈, 숙진, 여진, 거란, 중국에서 일본에서....
아라비아인으로 추정되는 처용과 고려시대 쌍화점 만두가게 주인, 이성계의 왼팔 이지란이 여진족이다. 여진족의 선조인 숙신 또는 말갈은 고구려의 속민이고 부단히도 백제와 신라를 괴롭혔던 부족이었다. 말갈은 동해안 북쪽으로 강원도 함경도에 살던 사람들로 추정된다. 그러면 이들 말갈의 후예들도 우리 유전자에 많이 들어왔을 것이고... 결국 이들은 고구려 유민과 함께 발해를 건국하고...아직도 북한에는 여진족 부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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