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최후의 추신구라 The Last Chushingura, 最後の忠臣蔵, 2010

호요토호 2024. 11. 21.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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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극은 재미있다. 밋밋한 일상에서 무언가 범상치 않은 사건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잦게 만든다. ‘최후의 추신구라’ 영화는 47인의 사무라이가 치욕을 당한 주군을 대신해서, 16년을 기다리며 준비한 복수를 실행한 다음, 할복 사형을 당한 그 이후의 이야기이다.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서 소개된 ‘추신구라’ 사건은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극적 요소를 모두 갖춘 이야기이다.

출처 : 다음영화

일본인에게 온징(恩人)이란 다른 사람에게 온을 입히면 그 사람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걸 갚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추신구라 복수극이 본 편이었다면, ‘최후의 추신구라’는 그 후편의 이야기로 온징(恩人)이 좀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베네딕트 여사가 설명한 온징(恩人)의 의미, 그리고 일본인들의 job의 사명, 이 투철한 사회의식이자 직업의식이 막스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소명의식과 너무 무리하게 연결 짓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왜일까.
물론 일본인들의 장인정신이야 인정해 줄 수 있다. 대를 이어 초밥을 만들고 파는 가게와 수백년된 우동집, 혼을 불어넣는 그들의 집요한 직업의식. 일본제품이 튼튼하고 잔 고장 없기로는 유명하니까.
그다지 전통에 목매지 않은 조선 문화, 일제 통치시기 한반도에 온 일본인들은 어떤 가게든 10년을 지속하지 않은 조선의 짧은 업력에 혀를 내 둘렀다고 한다. 우리로서는 집요하게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약하기 때문에 문화의 수입과 유통 혼종이 더 자유로운 편이다. 문화 자체가 장르 수입과 짬뽕으로 이루어진 K 문화, K팝, K 드라마.... 이게 가능한 이유이다. 우리가 먹는 짜장면과 짬뽕이 일식도 중식도 아닌 한국화된 중식인데 중국 작자면과 일본 나가사키 짬뽕 보다 더 맛있다.
멸사봉공, 개인적이고 사적인 이익을 버리고 공적인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는 말이다. 대의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는 것인데, 일본인들에게 그 봉공의 公과 대의의 義라는 개념의 범위는 지나치게 협소하다. 결국 모시는 중소기업 사장내지 폭력 조직의 오야붕을 위한 복수에 그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묻지마 멸사봉공 정신으로 연결되어 집단 자해극으로 무리한 인명 경시와 살상 정신으로 나타나는 바, 2차세계대전 당시 카미카제 특공과 무의미한 반자이 돌격, 옥쇄와 같은 자결로도 연결되는 일본인들의 특이한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게 한다.
어쨌든 일본인들은 추신구라 이야기에 강한 감동과 인상을 받고, 죽음을 미화한다. 일본 국민배우 야쿠쇼 코지가 열연한 주인공 마고자에몬의 마지막 할복... 그 연기 또한 한국인이 따라하기 힘든... 뭐랄까. 비장하면서도 오랜 염원에서 해방된 듯한...울음과 미소가 교차하는 그 연기...이리저리 따져도 야쿠쇼 코지의 연기는 탐복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영화 스포일러일지라도 그 연기의 명장면과 의미심장한 대사...

‘분부하신 중요한 사명을 마친 지금, 늦게나마 오오이시님을 따르려 합니다. 3대의 인연과 윤회와 환생의 끝에서 저를 바칩니다.’ 그리고 셋프쿠 切腹...

이 장면이 왜 멋있을까. 하기사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이니까. 얼마든지 멸사봉공할 수 있고, 살신성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드라마틱하면서도 로맨틱한 이야기, 강렬하고 장렬한  그 주인공의 이야기가 펼치는 미학의 세계에 우리 인간은 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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