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바람의 검, 신선조 When the Last Sword Is Drawn, 壬生義士伝, 2002

호요토호 2024. 11. 20.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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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에서 임전무퇴, 주군에 대한 충성, 용기와 명예를 중시하는 전사계급의 미덕, 기사도와 무사도, 모두 귀족 계급의 덕목이다. 무사도를 일본은 당당히 내세운다. 서양 기사도란 것도 그렇지만, 그 많고 많은 다양한 사무라이들의 정신세계를 일반화 시키는 것은 시작부터 무리이다. 물론 인과 의, 충을 따르는 무사도에 충실한 사무라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익에 따라 이리저리 주군을 바꾸는 것도 사무라이들끼리의 미덕으로 생각되기 때문에 일관되게 명예로운 정신세계로 추앙받기는 애초에 글러먹었다. 전체 인구의 5%를 차지하는 사무라이 계급의 정신을 일반 국민들의 정신으로 내 세우는 것은 더더욱 무리이다. 일종의 황국신민화 프로젝트의 일환이었을 뿐.

출처 : 다음영화

13세기 고쿠리 무쿠리, 고려와 원의 침공은 일본 사회에 큰 변화와 영향을 미쳤다. 침략자를 물리치면서 자신의 힘을 자각한 지방 영주와 중급 사무라이들, 칼잡이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 땅에 대한 지배를 요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긴 내전의 시기 전국시대, 센고쿠 시대를 거치면서 살인은 권리가 되고 의무가 된다. 그 난투의 분열된 힘이 오다 노부나가, 토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통합된다. 그리고 조선 침공.

조선의 피해는 두 번째 침략인 정유재란 때 극심했다. 특히 조선 백성과 병사들, 명나라 병사들은 일본군의 잔인함에 큰 충격을 받았다. 사람 생명을 그렇게 쉽게 살상하는 그들은 야만인으로서 오래도록 조선인의 마음에 자리 잡았다.

그들의 할복문화, 전투에서 패배했을 때, 부끄러움과 치욕을 이기지 못해, 또는 포로가 되어 공개적인 수치를 겪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처음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어서 자신의 잘못에 대한 죄 값을 스스로 목숨을 끊어 주군에 대한 충성을 다하고 가문의 명예를 지키는 쪽으로 나아갔다. 그래서 할복으로 알려진, ()의 찬미, 죽음에 대한 미화는 2차 세계대전 시기 집단 자살과 카미카제 특공대의 비극으로 연결된다.

삶과 죽음에 대한 일본인들의 극단적인 사고가 형성된 과정을 생각해 보면, 할복 자살은 자신들의 진짜 삶의 위기, 역사와 공동체 의식과 관련 없다는 점에서 얄팍하게 만 보인다. 패배와 항복을 수치스러워 하지만, 졌다고 인정한 순간, 강자에게 가장 약한 약자가 되어 누구보다 더 비굴하게 지배자를 섬기고 따르며 존경하는 일본인, 우리 눈에는 여전히, 앞으로 쭉 낯설 것 같다.

그래도 영화바람의 검, 신선조는 그 정도 까지 막 가지는 않는다. 가족을 위해 다소 비굴하더라도 돈을 벌고 모아야 하는 가장사무라이의 애환을 잘 그린 영화이다. 착하면서도 지혜롭고, 결기 있고, 용맹하며 신념에 찬, 비장한 연기를 모두 한 사람 배우 나카이 키이치이 소화해 낸다. 이 배우의 얼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얼굴이다.

배우 나카이 키이치, 출처 : 다음영화

주인공 칸이치로는 무사는 번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어겼고 그래서 스스로 의리를 저버린 무사로 생각한다. 따라서 자신과 가족을 먹고 살게 해준, 직업을 제공한 막부 편을 떠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것이고, 부끄럽지 않는 인생을 사는 것으로 생각한다. 영화 후반에는 애써 비장감을 짜내려한, 잘 이해 안 되는 장면이 몇 있다.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 왜 싸워야 하는지 별다른 고민 없이 싸우다가 죽는 것을 애써 긍정적으로 미화시킨다.그것이 결국 대의와 명분은 눈 씻고 찾을 수 없는 일본식 의리인가?

무사의 정신과 선비의 정신.... 강한 정신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또는 귀족지배계급의 덕목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러나 전쟁과 전투에서 승리를 추구한 혈기지용의 무사 보다. 자기 성찰을 통해 사회적인 인과 의를 실천하고, 예를 이루어 선한 본성을 실현하는 의리지용을 실천하는 선비가 더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러면 무엇하랴. 현재도 무사도를 일본의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일본사회에 비해 아무도 선비정신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한국사회.... 한 개인의 정신을 고양하고 마음 수양을 강조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중요하다. 개인의 품위도 그렇고 사회 전반의 품위를 위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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