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킬러들의 도시 in Bruges, 2009

호요토호 2025. 1. 1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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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풍경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영화이다. 킬러 두 명이 벨기에 도시 브뤼헤(브뤼주)라 는 도시에 왔다. 그런데 킬러 켄이 킬러 레이를 죽이려고 하는 이유는? 또는 레이가 스스로 죽으려고 하는 이유는?

출처 : 다음영화

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이다. 원래 인간은 죄를 갖고 태어났다. 따라서 죄를 질 운명이지만, 속죄와 그에 대한 대납, 죄를 짓더라도 어느 선까지는 지어야지 그 선을 넘는 죄는 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 이른바 서양인들의 사고방식이다.

대한민국 법은 서양인들의 윤리가 바탕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소하게 생각하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은 범죄 유형들이 형법에 상세하게 규정되어 있다. 대충의 거짓말은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데 킬러가 사람을 죽이는데, 아이는 죽여서는 안 된다고? 그렇다. 뭔 그런 기준이 다 있는가?

하기사 전쟁터에서도 와 우리 가족을 향해 총과 포탄을 쏜 적군 포로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 , 원칙과 규칙은 지켜져야 한다. 칸트의 정언명령이다. 어린 아이는 한 사회의 희망이다. 무고한 아이를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은 자신이 직업으로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한 죄보다, 더 크고 중요하다. 킬러 켄은 양심의 가책에 의해 정신과 마음이 이미 죽었다. 그런 켄을 보고 레이는 차마 켄을 죽이지 못한다. 속죄와 대납의 영역, 연옥에 이미 칸은 빠져 있으니까.

연옥, 큰 죄가 아닌 어중간한 죄를 지은 죽은 이의 영혼이 잠깐 동안 머무르는 곳이다. 지옥이지만, 구원과 용서가 이루어 질 수도 있는 곳이다. 살아있는 가족들이 죽은 이의 천국행을 바라면서 속죄 비용을 교회에 바쳤다. 죽은 영혼의 안녕과 평화를 바라는 것은 실은 살아 있는 자의  마음에 위로가 된다. 다른 한편, 교회는 돈 벌어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이 연옥의 아이디어, 중세 카톨릭의 창발적인 생각이었다고 평가 받는다.

출처 : 다음영화

큰 죄를 지으면 속죄의 비용은 더 많이 내어야 했을까? 아마 그럴 것이다. 죄를 지은 만큼 구원과 용서를 대신 빌어주는 산자들의 비용은 증가 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죄를 덜 짓는 것이 산자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편이 된다.

이미 세상은 연옥의 상태다. 어디 브뤼주만 그러하겠는가. 적어도 대한민국은 벌써부터 연옥 상태에 있다. 사람이 살아가야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강력한 동기는 아이를 키우고 낳고, 더 낳은 조건과 환경에서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거의 모든 개인들의 소망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지옥을 만드는 곳, 그러니까. 아이를 안 낳거나, 못 낳는 것, 어쨌든 여러 가지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박찬욱 감독식으로 보자면 품위가 없는 사회란 증거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는 아이가 등장하지 않는다. 미래, , 희망, 소망을 버린 채, 현재만을 산다는 것은 품위가 없다.

또는 과거의 전승 유적들, 과거 문화 기억, 역사로부터 단절되어 산다는 것도 품위가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희망이 사라진 연옥에 갇혀져, 속죄 조차 쉽지 않은 삶을 산다는 것은,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영화 킬러들의 도시’, 묵직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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