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팅턴은 문명의 충돌( ‘The Clash of Civilization’ 1997, 김영사)에서 문명을 이루는 요소 중 가치관, 종교와 같은 정신적인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러시아, 이슬람, 중국 문명과 서구문명과 충돌은 가치관과 문화의 차이 때문에 필연적이다. 정신적 가치나 종교적 차이가 문명을 이루는 바탕이기 때문에 이들 문명 간의 차이는 근본적인 데다가 문명 간의 상호작용은 서로의 차이를 부각하여 결국 충돌에 이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문명 갈등은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되는데, 우선 미시적 차원에서의 ‘단층선 분쟁’은 상이한 문명에 속한 가까운 인접국들 사이, 혹은 한 국가 안에 속해 있는 상이한 문명 집단 사이에 갈등이 발생하는 경우이다. 다음으로 거시적 차원에서의 ‘핵심국 분쟁’은 상이한 문명에 속한 주요 핵심 국가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분쟁이다.
1654년, 호멜니츠기 코사크 지도자는 폴란드 통치에 반대해 러시아 짜르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이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혁명기를 제외하고 모스크바가 주도하는 연방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그런데 우크라이나는 절묘한 단층선에 위치한 2개의 상이한 문화를 가진 단절국이다. 헌팅턴이 보기에 이미 1997년에도 전쟁이 벌어져도 이상한 국가가 아니었다. 그것이 내전이든, 러시아의 개입이든...
2개의 우크라이나 중 서부 우크라이나는 폴란드, 리투아아니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우크라이나어를 쓰는 등 민족 정체성에 대한 자각이 강하다. 또한 주민의 대다수는 러시아 정교에서 요구하는 종교의식을 준수하지만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는 동방카톨릭신자이다.
반면 동부 우크라이나 주민들은 러시아 정교신자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대부분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쓴다. 결혼을 비롯한 인적 교류가 활발해 러시아에 대한 적대감이 거의 없고, 경제적 관계도 아주 밀접하다.
1994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서부 13개주, 동부 13개주로 각각 득표가 갈려졌고, 극적으로 동부 지역 쿠츠마 후보가 52%로 대통령이 되었다. 미국 외교전략가인 브레진스키는 우크라이나의 정치적 혼돈을 두고 ‘ 이 선거는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을 놓고 서부 우크라이나의 유럽화한 슬라브인과 러시아-슬라브 주민 사이에 가로놓인 갈등을 반영하였으며 심지어는 이것을 공고히 다지는 측면도 있었다. 이것은 민족적 대립이라기보다는 상이한 문화들의 대립이다’라고 뉴욕타임즈에 기고하였다.
그 이후 잠재된 갈등은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으로 주도권은 서부지역으로 넘어갔고, 러시아는 크리미아 지역 합병을 강행했다.
헌팅턴에 반대하는 하랄드 뮐러 또한 문명의 공존(1999, 푸른 숲)에서 마찬가지로 나토의 동진에 대해 우려하였다. 나토 확장의 본질은 러시아 세력권 위협에 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나토 회원국이 되는 것은 도저히 수용하지 못할 것으로 봤다. 자유로운 동맹선택권과 러시아의 세계정치권에 미치는 영향력은 양립할 수 없는 딜레마고 갈등의 씨앗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지난 세계사에서 프랑스 나폴레옹의 침략도, 독일 히틀러의 전격전도, 결국 러시아의 추위를 이기지 못했다고 평가 받는다. 러시아의 저력... 예전과 같지 않다고 해도, 강대국을 넘어선 문명의 단층선을 지켜낼 힘은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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