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에서 가장 개방적인 나라, 한국의 역동적인 경제와 문화, 한국인의 의지와 굴복하지 않는 정신, 노력에 대한 찬사를 가끔 듣는다. 스스로의 자화자찬 국뽕은 열등감의 반영이고, 외국인들의 근거 없는 칭찬 국뽕은 근거 없는 자신감을 만들어 줄 뿐이다. 정신건강에 해롭다. 비교문화, 비교역사를 다룰 때 항상 조심해야 한다.
다른 역사는 다른 문화와 다른 정신세계를 낳는다. 한 개인의 삶은 공동체의 역사와 분리할 수 없다. 공동체의 서사에 한 개인의 정체성은 녹아있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인간의 범위 내에서 발생하는 역사적 사건과 경험을 애써 우리만의 것으로 우겨댈 수는 없지만, 역사가 다르게 전개되면, 사람들의 심성도 달라지고 집단적인 정체성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역사가 달라지면 주체성의 내용도 달라진다. 그런즉, 고정된 주체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며, 함부로 자기와 타인을 싸잡아 ‘우리’라고 우기는 것 역시 폭력이다.
한국학 권위자인 에드워드 슐츠 교수는 한국 역사에 대한 강연에서 한반도 지리적 위치에 따른 외세에 대한 굴복하지 않는 저항 정신을 강조한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이다. 국사 교과서에서 강조하는 역사 내용. 중국에 당당히 맞섰던 고구려, 당나라 침략에 통일 왕국을 지켜냈던 문무왕, 서희, 윤관, 강감찬, 이규보, 이순신....
그러면서 한국의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의 전통은 바로 외세에 저항해서 강한 국가를 지향했던 일반 백성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오래전부터 한국인 특유의 정체성, 어떤 침략에도 굴복하지 않는 강한 정신력이 우리 문화의 바탕이라는 것이다.
한반도 지배계층은 일본과 다르게 폭력으로만 피지배계층을 통치하지 않았고, 문무의 조화, 외적의 침략에 대비한 강력한 군대, 중앙 행정관료에 의한 합리적 통치가 일찍부터 자리 잡은 것은 그것에 연유한 것으로 본다.
자신과 가족, 식구, 가문, 지역공동체, 또는 중앙 정부를 보호하기 위해서 강화된 중앙집권 정치, 한 점 서울, 서울로 향하는 소용돌이 한국정치의 원형은 여기서 출발한 것으로 봐도 될 것 같다.
강력하고 정교한 국가, 모든 자원과 인력, 권력은 중앙으로 모일 수밖에 없고, 내부적으로 이 서울이라는 틀 안에 들어야 인정받는 소모적 경쟁과 정쟁의 일상화, 그리고 잠깐의 평화시기가 지나면 국제질서의 변화와 더불어 항상 북방 대륙으로부터, 해양세력의 주기적인 침략으로부터 전체 공동체를 보호해야 할 이중적인 상황, 역사의 반복이다.
한국인의 꺾이지 않는 마음, 역사의 도전과 응전의 결과이다. 내부의 분열인 정쟁의 일상화와 외세의 침략에 대응하는 이중적인 딜레마에서 그 역사의 파고를 헤치며 살아온 고려인, 조선인, 한국인. 남북한 코리언, 그들 마음에 강한 국가의 염원이 항상 있다는 것. 너무나도 당연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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