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야기

디태치먼트 Detachment, 2014

호요토호 2025. 2. 8. 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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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우리 딸을 퇴학시킨 선생이야? 무슨 이유로? 감당 못 한다고 퇴학시킬 거면 선생은 왜 하는 거야?", 품행 불량으로 퇴학시킨 교사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협박하는 여학생, 저런 딸을 이제는 내가 집에서 종일 돌봐야 하냐며 교사를 고소한다는 엄마의 난동, 아들이 다른 학생에게 폭력을 일삼는 건 교사가 잘 돌보지 않은 탓이라고 비난하는 학부모, 속살이 훤히 드러난 옷차림을 지적하는 교사에게 내가 뭘 입든 내 자유라고 맞받아치는 여학생, 영화 디태치먼트에 그려진 미국 학교 안의 세상은 요지경이다.

출처 : 다음영화

한 달 잔업만 100시간 이상, 한밤중 전화 항의에 시달리다가 "결혼이나 육아 경험이 없어 아이들을 다루지 못한다"는 폭언을 듣고 목숨을 끊은 23세 초등학교 교사. 정신질환으로 한 달 이상 병가를 낸 교사만 만 9백 명이란다. 선망 받던 교사는 기피 직종이 됐고, 공립 초등학교 교사의 임용 경쟁률이 20232.5 1까지 떨어져. 결국 교원 면허가 없어도 교사가 될 수 있게 한 나라. 옆 나라 일본의 교육현실이다.

교육현장에서 모욕과 명예훼손, 상해 폭행, 부당간섭, 협박, 성희롱, 무고 까지 다양한 권리 침해가 발생하는 미국, 일본, 한국, 세계화는 이렇게 평등하게 진행되었는가. 선생님에 대한 몰지각한 대우, 처우에 앞장서는 교육행정도 공통적이다. 그러니 선생님들은 자라목처럼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미국이나 일본이 한국이나 별 다를 게 없어 보이는 것이 그나마 위안?

학생은 왜 의욕이 없는 것일까. 학부모는 왜 분노에 가득 차 있는가. 왜 다들 병든 마음으로 타인에게 상처주기를 조금도 주저함이 없을까. 빗나간 사람을 만나서 골병이 든 선생님들은 거리두기, 디태치먼트를 할 수밖에 없다. 인지상정이다. 더 나아가서 무관심 디태치먼트해야 스트레스를 최소화 할 수 있다. 그러면 교육을 통해 발전 성장을 해야 할 건강한 학생들이 피해를 보는 구조이다.

무기력과 분노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할 수 없거나 극복할 수 없는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이 되는 경험은 학습된 무기력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과 낙인은 참을 수 없음을 넘어서서 스스로에게 낙인을 찍는다. 자신의 능력으로 피할 수 있거나 극복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그러한 상황에서 자포 자기하는 마음은 무기력으로 나타난다. 또 다른 스스로에 대한 낮은 자존감에 대한 불쾌감과 기분 나쁨은 남 탓으로 나타난다. 타인에 대한 분노 표출이다.

출처 : 다음영화

학생과 학부모와 선생님, 모두 한번 만들어진 정신적 감옥과 지옥에서 벗어나는 것은 어렵다. 같이 사는 이들과 더 나누라고, 공생과 상생을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실천하고 꿈꾸라고, 전쟁과 폭력이 없는 세상을 지향하라고, 약자를 위해 더 헌신하라고, 더 서로를 존중하고 아끼면서 무의미한 인생에서 참된 삶을 살아가라고. 모두 무기력과 분노 앞에서 공자님 말씀뿐이다.

교육 에듀케이션의 원래 뜻은 무언가를 끄집어낸다는 의미이다. 끄집어내기는커녕 갖고 있는 것도 묻어 버리는 교육현실, 추락한 교권과 방황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주인공 에드리언 브로디(헨리 바스 역)는 냉소의 열정으로 묵묵히 자신의 수업을 진행한다. 교실 안과 밖의 세상에서 이제 사회구조 탓을 하기에도, 나쁜 심성을 가진 개인 탓을 하기에도 지쳐 보인다.

삶의 가치와 교훈을 항상 우리는 강조한다. 주어진 조건과 환경을 이겨낼 용기를 가지라고, 목표를 지향하는 삶의 자세를 보이라고, 성공은 어려우나 굴복하지 않으며 의지를 가지고 조금 씩 발전하는 자신을 발견하라고. 무기력과 분노에 대한 처방, 서로에 대한 격려와 기대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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