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이나 윤리, 삶의 가치와 목적과 같은 것들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현대과학은 우리에게 일정 답이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가치판단은 과학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해되어야 하는 사실판단에 관한 문제로 치환된다.
친절과 이타심, 돌봄과 같은 인간의 특정행동도 종교와 철학의 가르침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다. 타인과 자기 자신, 공동체의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선택과 판단, 행동과 결정의 총합이다. 왜 어떤 사람들은 유복하고 현명하며, 잘 사는가. 각자 처한 환경 그리고 대응, 선택과 결정의 결과가 그 사람을 결정한다.
우리는 진동하는 다중 우주에 살고 있는가? 수축과 팽창을 쉬지 않고 되풀이하여 무한 연장되는 빅뱅과 빅크런지(대 붕괴)의 우주, 여기와 비슷한 시간의 흐름을 가진 과거와 현재의 무한 우주. 가능 할 수도 있겠다. 한 시점에 하나의 우주가 있고, 시간 차를 두고 계속 발생하는 우주, 평행우주론을 넘어선다. 우주는 업쿼크와 타우입자의 진동하는 초끈이 만들어낸 11차원의 세계로 이루어 졌다는 알쏭달쏭한 과학 이야기 이론들들.
메가 우주, 아기우주, 시공간의 곡률과 블랙홀 물리학, 웜홀과 우주끈, 머리 아프다. 우주가 하나라면 인간과 문명이 발생하기 까지 무수한 우연의 연속이어야 하는데 그럴 리 없다는. 그렇기 때문에 일어날 일은 또 반복해서 무한히 일어날 수 있다는...평행우주에 살고 있고 또는 다중우주에 우리와 같은 이들이 시간차를 두면서 달리 진행되는 삶을 산다는...
이쯤 되면 우주론, 양자역학 물리학은 꿈과 이상, 환상과 상상, 지적 유희와 대리만족의 영역이 되 버린다. 도대체 영화와 우주물리학의 차이는 뭐란 말인가? 어쨌든 영화의 메시지는 따뜻하다.
우리가 과거에 포기하고 실패했던 무수한 선택에서 파생된 또 다른 삶들을 경험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 올바른 선택이었는지 판단할 수 없다. 영화 주인공 에블린과 웨이먼드의 엇갈린 선택, 현재 불행하다 느끼며 이혼을 마음먹는 현실이 또 다른 우주의 누군가에게는 소망하는 미래였다는 현실.
영화는 화려하고 스피디하게 진행한다.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정신 사납게 한다. 시간도 꽤 길다. 시각적 자극이 커서 오히려 시신경은 거부감을 느낄 정도다. 최근 OTT 집 영화에 대항하는 영화산업의 트렌드인가. 더 자극적이면서 시간은 좀 더 길게, 관객을 지치게 한다. 그래도 그렇지, 극의 진행 속도를 좀 천천히, 그리고 각 장면의 다이어트가 이루어졌다면 더 좋았을 것도 같다.
다중우주까지는 아니지만 가끔 전생이 있었으면, 또는 이생 다음 후생이 있었으면 생각하던 차에, 나의 삶 바로 옆에, 여럿이 아주 많은 우주가 비슷하게 흘러간다는 생각은 의미 없는 인생사에 작은 위로가 되어 주는 듯 하다.
‘사랑해요’, ‘친절’. 좀 넘쳐나도 좋은 인간의 말과 행동이다. 아! 그리고 세금. 영화의 주 배경이 국세청 건물이라는...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가장 큰 위험 리스크 중에 하나가 세금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원수 같은 가족들, 부모 남편 아내 자식들....
의미 없는 우주의 원리에 인간사의 의미 찾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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