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전,란 Uprising은 호민(호걸)의 탄생 과정을 보여준다. 원민과 항민을 규합하는 자는 호민이다. 강동원은 원래 노비가 되어서는 안 되는 양인이다. 체제, 사회구조 모순에 의해 좌절한 이들이 주인공 ‘천영, 강동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제임스 팔레 미 워싱턴대 교수가 “인구의 30%가 노예라는 점에서 조선은 노예제 사회(Slavery Society)”라고 주장한다. 그 이후 ‘노비는 노예인가? 농노인가?’ 한국의 역사학자들에 의해 진지하게 연구가 이루어졌다. 노비가 양인과 결혼이 가능했고, 주인과 떨어져 살며 일정량의 현물만 바치면 되는 납공노비가 있었다는 것을 근거로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혹한 노동, 착취 받는 미국 흑인노예가 아니라 보다 자유로운 신분이었다라고 반박하기도 한다. 그런데 노비나, 노예나, 농노나, 자유가 없거나 부족한 건 마찬가지이다.
영화 속 민초들은 경복궁을 불태우고 상전을 죽인다. 도망가는 왕의 군대와 싸우기 까지 한다. 계급해방의 순간이다. 그런데 갑자기 자세를 바꿔 의병활동에 적극 자원해서 왜병과 싸운다. 신분적 귀천, 직업적 차별에 의해 불평등한 대우를 받는 입장에서 외적과 싸우는 것을 영화는 미화한다. 국가위기에 외적과 싸우는 이들 양인, 천민, 노비들의 모습은 비현실, 판타지이다. 역사학자 임지현은 임진왜란 때 양반 오희문(吳希文)이 쓴 ‘쇄미록’(瑣尾錄)에는 쌀을 나눠주는 등 유화책을 쓰는 왜병을 오히려 환영한다는 내용을 근거로 ‘대표적인 거짓 역사’라고 주장한다.
애국 애족하는 민중이어야만 하는 당위가 비현실적이라면, “편애는 소수의 교만을 낳고, 박애는 다수의 무질서를 낳는다.”라는 차승헌 (선조 역)의 대사는 상당히 현실적이다. 조선이란 사회 경제 체제는 집요하게 상민과 노비 천민인 ‘민중을 개돼지’ 취급한 것 같다. 양반귀족 지배층은 남의 잘못에는 가혹한 비판을. 자신들의 잘못에는 늘 그럴듯해 보이는 핑계와 사연을 시연한다. 대한민국이 선조이고, 선조가 대한민국이다.
배우 진선규가 연기한 김자령 장군은 역모에 몰려 억울하게 죽은 젊은 장군, 김덕령 장군이 모티브이다. 뛰어난 검술실력, 양반으로서 품위를 지키면서 백성들과 동고동락을 하는 참된 선비. 역사적 사실일까?
충장공 김덕령 장군은 많은 일화를 남기고 있는데, 장가가는 날, 장인이 도망 노비를 잡으러 갔다가 살해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홀로 노비들의 은신처로 찾아가 노비들을 살해해 복수를 하였다고 한다. 또 의병장 시절 군율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했고, 사람을 함부로 죽인다는 비판도 받았다.
가까운 일제 강점기 시기, 많은 이들이 독립운동을 했고, 더 많은 이들이 친일을 했을 것이다. 그 보다 더 많은 이들은 먹고 살기 바빠 무관심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민족공동체, 조선 이라는 국가 공동체에 대한 소속의식이 약한 조선시대에 애국 애족하는 민중과 양반귀족의 협력은 아예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약간의 억지로 보이기는 한다.
그보다는 영화 전,란 Uprising이 보여주는 현실, 양반귀족들도 자신들의 우월한 사회경제적 지위를 지키는 데 열심이고, 그 이하 양인과 천민, 노비들도 양반귀족처럼 살기 위한 노력에 최선을 다한다. 면천, 노비신분과 천민에서 벗어나 과거 시험을 칠 자격이 주어진다면, 왜 일본군과 굳이 열심히 싸우지 않겠는가.
신분상승의 열기, 그 유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키느냐, 새로 진입하느냐, 뺏고 뺏기는 사회경제적 신분, 그 열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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