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같을 수가 없다. 백인과 흑인은 다르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사회적 힘의 차이는 대체로 갈등의 원인이다. 그 갈등의 원인의 원인이 또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대충 우리는 안다.
시작은 우생학이다. 나찌 독일은 유태인만 학살한 것이 아니다. 슬라브인, 집시, 동성애자, 정신병환자, 장애인도 학살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독일 나찌 이전에는 잔혹한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이 저지른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식민통치가 있다. 백인에 의해 저질러진 아메리카 인디언 학살, 그리고 흑인노예를 통한 경제적 착취. 이것을 가능하게 했던 생각은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짐승으로 보는 우생학이었다.
처음부터 차이를 알지 못하면 갈등이 없을 것이고, 다름을 강조하거나 차이를 인식하면 갈등은 커진다. 일반적으로 이처럼 차이에 대한 인식 유무가 갈등 해소 내지 갈등 유발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다른 존재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호불호의 감정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반응이기는 하다. 즉 1차적인 감성적 판단 단계이다. 영화에서 토니 발레롱가는 백인이고 돈 셜리 박사는 흑인이다. 그러니 감성적 측면에서 갈등의 해법인, 화해, 공존, 상생, 사이 좋게 지내기 위해서 사람간의 차이 보다 같은 인간으로서 동질성, 유사함을 강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대로, 차이를 제대로 인식하거나 있는 차이를 강조 하는 것이 갈등을 줄이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차이가 주어지는 현실에 수긍하고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드러내면서 갈등이 줄어들 수 있는 것은 상대방 타인에 대한 인정과 이해에 도달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개별 조건에서 차이가 드러나도 인간은 공감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영화 ‘그린북’은 보여준다.
더구나 토니 발레롱가는 백인이지만, 일반적인 백인이 아니라, 미국사회에서 차별받는 이탈리아계 백인이다. 돈 셜리 박사는 차별 받는 흑인이 아니라, 잘 교육받고 성공한 예술가이자 동성애자라는 점에서 흑인이 아니다. "난 백인 부자들이 문화적인 척 할 수 있게 그들에게 돈 받고 피아노 치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난 그들에겐 그저 일개 검둥이오. 왜냐하면 그게 그들의 진짜 문화니까. 그리고 난 그 고통을 혼자서 짊어진다고, 왜냐하면 난 내 동포들 사이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하오, 그들과 같지 않다는 이유로. 그래서 내가 흑인답지도 않고, 백인인 것도 아니고, 남자답지도 못하다면 나는 도대체 뭐인거요?"
‘외부의 객관적 시선에 의한 공공의 의견을 접하지 못하면 인간은 최악의 모습을 드러내죠’< HBO 다큐멘터리 야만의 역사>
외부의 객관적 시선도 없고, 공공의 의견을 접할 수 없는 환경, “폭력으로는 못 이겨요, 토니. 품위를 유지할 때만 이기지. 품위가 늘 승리하는 거요.”라고 돈 셜리 박사는 말한다.
그 최악의 모습을 상정하고 살아야 하는 조건에서 품위 없는 인간들이 다수인 사회, 인간은 편견 덩어리 존재라는 것. 그러면서도 서로 다른 존재를 이해하고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 ‘그린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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