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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철학자의 까다로운 행복,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우다이모니아

호요토호 2025. 4. 20.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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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의 뜻이 최고로 빛난다인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는 출생부터가 금수저이다. 아버지는 마케도니아 왕가의 주치의였고, 최고 철학자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서 공부했다. 이후 40대 중반에 그리스를 넘어 오리엔트, 전 세상을 정복하고자 했던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 되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지지와 후원으로 아테네에서 리케이온 학원을 열고, 학문을 연구하면서 제자들을 교육했다. 그의 철학은 고대에서 중세까지 유럽을 지배했기에, 시인 단테는 "모든 박식한 자들의 스승"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치켜세웠다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는 좋음을 원칙적으로 자연적인 욕구의 대상으로 인정한다. 각자가 각각의 행위에서 원하고 바라는 것으로서 좋은 것이자 선한 것이다. 공부를 잘하면 좋다. 돈을 많이 벌면 좋다. 연기를 잘하면 좋다. 대단히 상식적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모든 사람이 원하는 욕구 충족에 의한 행복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욕망을 채우는 것도 바람직하다. 다만, 이러한 욕구와 욕망을 충족하는 데는 순서와 위계, 통일된 질서가 필요하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영혼의 종류를 나눈다. 인간의 식물적 영혼은 영양 섭취와 성장, 재생산을 담당하고, ‘동물적 영혼은 감각, 욕구, 운동을 가능하게 한다. 인간의 가장 높은 차원의 영혼은 이성적 영혼으로서 사고, 논리, 추론, 의지를 가능하게 한다.

행복에도 세 가지 형상이 있는 데, ‘향락적인 삶은 쾌락과 만족을 누리는 삶이고, ‘정치적으로 자유를 누리며 책임지는 시민의 삶은 명예와 인정을 추구하는 삶이다. ‘연구하는 철학자의 삶이란 관조적인 삶으로서 이성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고, 지적인 활동에서 행복을 얻는 삶을 뜻한다.

동물적 영혼은 향락적인 삶과 관련이 있다. 감각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동물의 본능과 유사하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러한 삶을 최고 좋음에 부적합하다고 보았다. 여성과 노예는 이러한 행복만이 가능할 뿐이다. 정치적인 삶, 시민으로서 폴리스의 통치와 관련된 행위는 여성과 노예는 애초에 불가능할뿐더러, 이디오테스, 정치에 무관심한 남성 시민은 행복할 수 가 없다.

그 다음 경제적 풍요와 안락을 누리면서, 도시 국가의 정치에 성실히 참여한다 하더라도, 학문을 연구하면서 제자를 가르치는 일에서 기쁨을 누리는 이는 과연 그 당시 아테네 시민 기준으로 몇 명이나 될까?

지금의 기준으로 중소기업 CEO 이상의 경제력에, 국립대학 총장으로서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중장년 남성, 호화로운 집에서 많은 노예를 거느리면서 편안히 학문연구를 하는 사람의 행복일 뿐이라고 하면 너무 박한 평가일까.

어쨌든 사람이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 행복의 세 형상이 모두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이다. 아마도 본인만이 세 가지 형상, 행복의 기준 충족이 모두 가능했을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야만인 페르시아 여성과 만 명의 그리스 청년을 강제 결혼시키다니...자신은 헤라클레스 허벅지에서 태어났다고 우기고....30대 초반에 거의 이성을 잃은 과대망상증 환자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에우다이모니아는 까다롭다. 실행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이해하기도 힘든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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