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내적인 완성도를 따지기는 민망한, 재미와 볼거리는 조금 있는, 인물, 사건, 배경이 그럴 듯하지만, 어디서 다 가져온 듯한, ‘매드맥스’와 레지던트 이블‘이 떠오르는 영화다. 폭력 종결자 ‘데우스 엑스 마키나’ (god from the machine) 마동석이 주먹 원타치 기계에서 총질 기계로 진화를 볼 수 있다.
주인공이든 조연이든 배우들은 나름 생명, 사랑, 자유, 진실, 용기 등의 가치를 지향한다. 갈등관계에 있는 인물과 상황에 맞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위한 여정은 그럴 듯하다는 개연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영화 속으로 몰입을 하기 위해서는 플롯은 논리적이어야 한다. 영화꾼의 재주는 그럴듯한데서 멈추버리면 안 된다. 넘어서기 위해서는 철학이 필요하다. 재능의 영역이다.
예를 들어서 ‘공각기동대’의 바토는 “생명의 본질이 유전자를 끼워 넣어 전파하는 정보라고 한다면 사회나 문화 역시 방대한 기억 시스템과 다를 바 없고, 도시는 거대한 외부기억장치라는 얘기다.”라고 한다. 사회, 국가, 문명이란 것도 결국 거대한 유전자를 지닌 데이터베이스로 이해하면서, 인간과 기계, 인공지능의 구별이 어려운 영화의 시대상황을 납득시킨다.
양기수 박사(이희준 분)가 딸의 영생을 위해 수없이 많은 생명의 희생을 당연시 하는 것이 설득력이 없다. 디스토피아 환경에서 효율적인 인간으로 개조하는 연구가 필요하다거나, 옳다는 주장 할 수도 있으나, 자신의 주장과 이익에 방해되는 것들에 대한 묻지 마 폭력적 제거는 이희준 배우의 훌륭한 연기가 대면 대면하게 느껴질 뿐이다.
영화 ‘황야’에서 읽을 수 있는 사회문화 코드는 전작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유사하게 ‘각자도생’ 일 뿐, 우리 사회를 둘러싼 다양한 사회적 담론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정서상의 콤플렉스로 표현되는 이깟 세상 망했으면 하는 시기 질투, 분노 억울함의 ‘르상티망’이다. 이런 세상에서 사기 캐릭터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 마동석 배우에 대한 일정 대중의 수요는 나름 ‘정의 正義 중독’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이런 영화 찍는데 넷플릭스가 큰 돈 들여, 배우 개런티와 제작자들 인건비를 부담하며, 일자리 창출하는 것이 나쁘지는 않기는 하다. 킬링 타임용으로 본다면 뭐 큰 재미거리도, 시비거리도 없겠지만 한편에서 TV 영화 장르 수준이 SF ‘정이’처럼 계속 수준이 뒤떨어진다면, K 문화에 대한 저평가로 이어지지 않을 까. 걱정이 되기는 한다. 애써 영화를 찍고 만들었을 노고를 생각하면, 쉽게 만들고 값싸게 소비되는 것처럼 보여 안쓰럽기도 하다.
하여간 넷플릭스 한국 영화 투자는 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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