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사회/행복의 의미와 기준

[제24편] 공리주의 개혁에서 사회주의 까지, 로버트 오언

도량분계 2026. 6. 13.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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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성공한 기업가이자 공상적 사회주의자 로버트 오언(1771~1858), 행복의 역사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람이다.

당시 영국의 전형적인 공장들은 아동 노동 착취와 열악한 위생, 극심한 노동 강도로 악명이 높았다. 오언은 당시 관행이던 10세 미만 아동의 노동을 전면 금지하고 학교를 세워. 노동자 자녀들에게 무상 교육을 제공하고자 했다. 또한 노동자들의 실질 생활수준을 높이기 위해 성인 노동자의 하루 작업 시간을 10시간 반으로 단축 했고, 공장 주변에 깨끗하고 저렴한 주거지를 보급하고 공동 상점을 열어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에 양질의 생필품을 공급했다. 이 과정에서 동업 자본가, 투자자들은 노동자들의 복지와 교육 투자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낭비라고 생각하여 반대했고 결국 소송과 경매로 이어졌다. 오언은 새로운 투자자들을 모아 181312월에 뉴라너크 공장을 완전히 인수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로버트 오언

오언은 인간성을 신뢰하고, 성선설을 믿었다. 그리고 “(인간의 품성은) 자신이 만드는 것이 아니고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다(Not made by him but for him)” 이러한 생각은 공리주의가 지향하는 사회 전체의 행복 증진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론으로 연결 된다. 이기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을 하는 개인을 단순히 처벌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들을 둘러싼 산업 환경과 교육 제도를 뜯어고침으로써 사회 전체의 고통을 줄이고 행복의 총량을 늘릴 수 있다는 믿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근무환경, 복지후생제도 등을 바꾸면 노동자들이 바뀌고 그러면 더 열심히 일해 결국 이익을 더 많이 내는 경영 성과가 나오게 된다고 오언은 믿었다. 뉴라너크에서 오언은 그 간단한 이론을 시험했고 결국 성공했다. 뉴라나크는 유럽 전역의 정치가와 사회 개혁가들이 방문하는 모범이 되었다. 이렇게 해서 자본주의가 싹 트던 산업혁명기에 행복한 사회주의자가 탄생하게 되었다.

벤담의 친구였던 오언이 공리주의적 기반에서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이유는 사유재산제도와 자본주의적 경쟁 체제 자체를 악한 환경의 근원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초기 공리주의는 기존 제도의 불합리함을 비판하면서도 기본적으로 사유재산과 시장의 경쟁을 인정하는 틀 안에서 사회 전체의 행복을 늘리려 했다. 그러나 오언은 산업혁명기의 비참한 현실을 목격하면서 단순히 노동 환경을 조금 개선하거나 법률을 바꾸는 수준으로는 대다수 노동자의 행복을 달성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는 이윤 극대화만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무한 경쟁이 인간을 이기적으로 만들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근본적인 악의 환경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오언은 공리주의자들과 다른 처방을 내리게 된다. 인간의 품성이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다면, 인간을 선하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사유재산을 폐지하고 생산과 소비를 공동으로 하는 새로운 사회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협동과 공동 소유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를 만들어 경쟁 대신 상호 부조를 실천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실현된다고 믿은 것이다.

이후 로버트 오언은 뉴라나크 방적공장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미국 인디애나주에 뉴하모니라는 공동체를 세웠다. 그는 사유재산과 종교, 결혼 제도를 인간 불행의 근원으로 보고, 이를 배제한 완벽한 협동 공동체를 실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 실험은 완벽히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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